슬픔 다스리기: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인간실격.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였다. 다자이 오사무의 동명 소설과 내용은 다르지만, 염세적 분위기는 그것의 마지막 문장 하나까지도 그대로 닮아있는 드라마. 돋보이고 싶지만 타인과의 관계가 두렵고, 개인이 중요하지만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모두 우울하고 외롭다. 힘들고 아프다. 인생의 트라우마와 타인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 앞을 볼 여유도 없이 –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아버지, 나는 아무것도 못됐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것도 못됐어. 사는 게 너무 창피해

현실의 지옥 앞에서 주인공인 부정은 아버지에게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세상에 기댈 곳 없는 두 사람은 그저 그런 위로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이 더 안쓰러웠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감정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4편 즈음에서 재생을 멈추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밖으로 나왔더랬다. 아우터를 걸치기 귀찮아 셔츠만 입고 나왔는데도 바깥은 춥지 않았다. 드라마 안은 계절도 분위기도 겨울이었는데, 바깥은 완연한 봄이었다.

‘봄이 온 지 이미 한참 지났다고 해도 속을만하겠는데?’

그런데, 속은 건 나만은 아니었다. 쓰레기장 옆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으니까. 뉴스에서 벚꽃 이야기가 나오기도 전에 이렇게 개화가 진행되어도 좋은 건가 싶었지만, 뭐가 먼저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어쩌면 이미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하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긴 벌써 3월도 저물어가고 있다. 

그렇게 올해 처음 핀 벚꽃 잎이 날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연달아 네 개의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생활반경이 같아 그 대상이 겹치는 친구에게도 연락이 와서, 우리는 복장을 갖추고 함께 차례차례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간단히 규칙을 정했고, 그대로 식장에서 친구는 꽃을 올리고 함께 기도를 했다.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는 분들이지만 진심으로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상주와 대면하는 것은 늘 어색하다. ‘내 위로가 위로가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기운 내라고 한마디 건네기엔 너무 오랜 시간 이어졌을 힘든 시간이 있었을 테니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친구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다 나왔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장례식장에 들렀다가 올 때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꼭 다른 곳에서 뭔가를 사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 그랬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
초당옥수수커피라는 촌스러운 디자인의 커피를 집어 포스 앞에 섰더니 원플러스원이라고 한 개 더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커피를 하나 더 집어 들었는데, 조금 전에 봤던 것인데도 생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랬을 것이다. 

오늘 뵙고 온 분들은 이제 초당옥수수커피라는 것을 다시 볼 수 없겠지. 

인간실격의 남자주인공인 강재의 아버지는 중환자였는데, 어느 날 병실에서 링거바늘과 호흡기를 빼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오랫동안 일상에서 서로의 공간을 점유하던 이의 소멸은 강재의 환경에 파격을 만들고, 그는 이런 예상치 못했던 사건에 큰 트라우마를 얻게 된다.
꼭 그렇게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라 해도 죽음이란 건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가장 흔들림이 큰 이벤트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으며, 돌이킬 수 없다. 틀어진 사람과 다시 화해를 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찬장 구석에서 다시 찾아내는 것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생일 케이크를 가르듯, 열려있던 냉장고 문을 닫듯, 스위치를 내리듯, 그렇게 ‘딸깍’ 하고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버린다. 인간은 모두 죽음을 향하고, 삶은 그 사실을 잊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어쨌든, 이번주 주말의 시작이 두텁고 어둡고 무거웠어서, 뭔가를 열심히 하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 

덧) 고인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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