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23-8-20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는데 조금 속도를 냈더니 반바지 아래로 한기가 느껴졌다. 한낮을 보면 주변이 녹아내리는 더위를 아직 한참 견뎌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갑자기 가을 냄새가 나면 당황스럽잖아.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가 날 정도의 비가 반나절 정도 내리고 나면 그때부터는 가을옷을 입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유의 팔레트에 넬이 출연했다. 늘 맏언니처럼 능숙한 진행을 보여주는 아이유지만 이번에는 조금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존경하는 음악가 선배들을 잘 소개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따뜻한 마음이 한가득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이 클립에는 ‘칼라 스위치’라고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는 코너가 있는데, 이때 서로의 곡을 선택한 이유나 원곡의 서사를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음악 뒷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그 곡에 한층 더 관심이 가게 돼. 그렇게 아이유가 커버했던 넬의 ‘지구가 태양을 네 번’이 끝나갈 때 즈음 브러시 스틱 드럼엔딩에 가슴이 쿵.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 박재정의 ‘헤어지자고 말해요’를 딥페이크 보이스를 통해 김동률의 목소리로 듣게 되었다. 엄청난 고퀄리티였지만 상당히 기분이 이상했는데, 삼사분 남짓의 음악을 단지 그 산출물로만 평가하고 소비하는 게 당연하다는 발상이 맘에 들지 않아서였을 거다. 원곡을 만들고, 부르고, 리메이크하는 뒤쪽에는 그 아티스트가 오롯이 들였던 고민과 노력의 시간이 있다.

인간은 수명이 있고,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가 허락된 시간을 쪼개어 공을 들인 콘텐츠들은 적어도 시간의, 그리고 영혼의 가치가 있다. 아티스트의 죽음으로 새로운 콘텐츠는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남겨진 유산을 추억한다. 그것이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무례하게 알고리즘으로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은 자를 무덤에서 꺼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아티스트마다 마지막 트랙엔 미안함이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마지막 트랙인 이유도 있어서..

아이유의 그 말을 들으며 모든 음악가 앨범의 마지막 곡도 살펴 듣고 싶어졌다. 그 노력과 고민에 응원을 해주고 싶은 마음 반 그리고 진심으로 모든 음악가의 마지막 트랙이 궁금해져 버린 것 반.


미국에 갑자기 건너가게 되어 일 년 반이 넘게 보지 못했던 친구가 한국에 다니러 왔다. 함께 일했던 친구들과 함께 오랜만에 모여 한잔 했는데, 친한 사람들은 얼마를 떨어져 있던 만나면 마치 어제 본 것 같다는게 신기하다. 한참만에 보는 그 친구는 진지하고 걱정도 많은 편이어서, 놀리는 게 꽤 재미있다는 거.

– 그런 이유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나 필요한 인력이 상상 이상으로 적어질 거야.

‘음, 그래도 노동법이 있으니 쉽게 인력을 줄이거나 하지는 못할걸요.’

– 내보내기는 힘들지. 하지만 뽑지를 않게 되니까. 게다가 필요 없는 게 명확해지면 기업에서 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생각해 내지 않겠어?

‘ESG 경영이 화두이기도 하고, 기업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지 않을 거예요.’

– 사실 직업도 문제지만, 중요한 알고리즘 자체를 인류가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더 큰 문제야.’

‘정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법을 만들겠죠.’

– 변화의 리드타임이 너무 짧은 데다가 기술을 쉽게 이해할 수 조차 없으니 제대로 컨트롤을 만드는 게 어려운 거지.’

‘기술을 만들어내는 쪽에서도 고민을 하지 않을까요?’

– 오펜하이머 봤니?’

‘….’

그녀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기 때문에 일터 이야기로 말을 돌렸는데, 더욱더 우울해졌다는 이야기.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가장 짜증 나는 손님은 취해서 잠든 사람이라고 했다. 어디를 가야 하는지 제대로 말도 안 하고, 도착해서도 내릴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라나? 내가 술에 취하면 잠이 드는 편이라 걱정이 됐는지 아니면 놀리고 싶었는지 친절한 친구들이 택시를 탄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정말이었다는 거. 약간 과장은 하지만, 없는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고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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