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서는 잘 살고 계신가요?
밑도 끝도 없었나요? 잘 산다는 것이 뭘까. 질문을 하면서도 생각했어요. ‘나도 대답하기 어렵겠는데..’ 하고 말이죠. 잘 살고, 멋지게 산다는 건 화성에 거주지를 만들 꿈을 꾸거나, 사람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거나, 조금 평범하게는 기업의 미래를 이끄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일까요?
그 이야기는 조금 접어두고, 얼마 전 친구가 페북에 추천 포스트를 올린 이야기를 해볼게요. 왓챠의 새 드라마 시리즈였는데, 제목이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였습니다.
먼저 오랜만에 보는 한석규 님이 반가웠어요. 그분은 목소리가 너무 좋아. 원래 성우였다죠? 친구는 그 드라마의 O.S.T를 부른 정밀아 님의 팬이고, 저도 그녀를 좋아합니다. 물론 그 친구 때문에 알게 됐지만. 이어폰을 꽂고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마치 옆에서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아. 아주 슬픈 이야기를 말이에요.
드라마의 부제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입니다. 동명 에세이가 원작인 이 드라마는 작가 강창래 님의 실제 이야기라고 해요. 작가님은 어느 날 문득 대장암에 걸린 부인의 부탁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나를 위해 당신이 요리를 해줬으면 좋겠어
라면밖에 못 끓이던 작가님은 그때부터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부인에게 요리를 해주게 됩니다. 이 에세이에는 부인을 위해 준비했던 요리 레시피와 후일담이 기록되어 있어요. 요리를 시작한 이후 부인은 작가님의 음식만을 먹었다고 해요. 그리고, 결혼생활을 35년 해왔지만, 마지막 삼 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아직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어요. 마지막 회 즈음 식탁을 혼자 마주하는 한석규를 보는 게 두려워서 그랬나? 대신 정밀아 님의 O.S.T를 계속 돌려 듣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다가 문득 잘 산다는 건 그녀의 음악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풍처럼 빈 곳 없이 귀를 황홀하게 하는 음악도 나름 매력 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없거든요. 정밀아 님의 곡에는 기타와 그녀의 보컬 사이에 함께 앉아 고민하는 저 자신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음악이 가지고 있는 여백 안으로 들어가 자리 잡는다고 할까. 주변이 단순하고 명료하기 때문에 내가
그 여백으로 들어가는 걸음,
바닥을 밟는 느낌,
앉을자리에 손을 댔을 때의 온도,
앉은 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들을, 모래알이 벗겨진 상처에 닿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게 돼요. 그러면, ‘아, 내가 살아있구나.’ 알게 되고, 이내 ‘살아있으니 좋네’ 하게 됩니다.
강창래 작가님의 부인은 왜 결혼생활 35년 중 대장암에 걸려 고생했던 마지막 삼 년이 가장 행복했을까요?
그녀도 건강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복잡한 삶을 헤쳐나가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겁니다. 그러다가 건강 문제가 생겼고, 어느 날 남편에게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달라고 했죠. 이후 그녀는 ‘남편이 요리를 하고, 자신은 그것을 먹는다’는 심플한 의식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단순해진 – 하지만 섬세해진 – 삶 속의 여백을 자신의 감정, 대화, 느낌으로 오롯이 채워 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그녀는 달에 로켓을 보내지도, 인공지능 개발업에 종사하지도 않았지만 – 심지어는 암환자였음에도 – 잘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생각보다 인생은 길지 않고,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꿋꿋하게 변하지 않고 서 있어도, 주변에 의해 내 가치가 변하죠. 인간만의 특징이라는 자각 능력과 지능 덕에 나 자신을 의심하고 부정하게 됩니다. 이 정도라면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칭찬받아야 할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잠시 멈추고 그것을 바라봐야죠. 나라도 나를 칭찬해줘야 할 테니까요.
그건 그렇고, 저는 언제쯤 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