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러브록과 면도

제임스 러브록

런던에 갔을 때였다. 언제나처럼 별 계획이 없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주변 지도를 대충 검색하고는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다. 하지만, 들어가고 보니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였는데, 길을 잘 못 찾는 내겐 특별한 일도 아니다. 물론 딱히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내셔널 갤러리로 향했던 것도 아니었어서 별로 개의치 않고 그곳을 그냥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벽의 작품들을 감상하며 걷다가 제임스 러브록(영국의 과학자로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의 사진을 만났다. 작품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중 러브록이 화상 예방법에 대한 연구를 할 때, 토끼의 피부 대신 자신의 피부에 테스트를 하였음

과연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 다운 에피소드였지만, 테스트를 위해 토끼의 털을 면도하기가 너무 귀찮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면 분명히 저런 이유였을 거다. 수염이 길게 자라는 타입이 아니라 면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들보들한 토끼 털이라면 면도 하기가 더 어렵겠지.
제임스 러브록은 나이가 100세를 넘어섰지만, 어느 사진에서도 수염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매번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 다녔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연구가 주업인 학자인데 몰두하다 보면 이내 덥수룩해졌을 것이다. 역시 그는 수염이 안 나는 타입임에 틀림없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 가이아 이론: 지구를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유기체로 여기는 이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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