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마련

어떤 일이든지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쉽고 부담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어렵고 난해한 일이 되기도 한다. 내게 집을 구하는 일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어떤 일 보다도 어려웠다. 게다가 서울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샌프란시스코라니,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물론 오래 살 집을 구하는 것이라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만, 단기로 일 이년 살 집을 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되는 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드니까.(물론 오래 살 집이라도 잘 구해지지 않으면 싫을 것 같음) 그 이유로 혹시 혈혈단신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을 아끼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집을 구했던 – 어쨌든 일 년 잘 살다 왔으니까요 – 경험을 공유해볼까 한다.

내가 경험적으로 습득한 샌프란시스코 하우징의 특징은

가격이 비싸고,
같은 가격이라도 집의 퀄리티가 천차만별이며,
내가 원한다고 바로 입주할 수도 없고,
신용이 없는 방금 도착한 생면부지 외국인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게다가 안전할 것 같은 샌프란시스코도 밤에 혼자 걸어 다니기 위험한 지역은 존재하기 때문에, 위치도 잘 살펴야 한다. 이 지역은 집이 만족스럽다고 해도 바로 계약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동인구가 많아 하우징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괜찮은 조건의 스튜디오라면 대부분 집주인이 많은 신청자들 안에서 원하는 입주자를 선택하게 된다.

브라이언 크리스천 Brian Christian의 <알고리즘, 인생을 계산하다 Algorithms to live by>라는 책의 서문을 보면 ‘샌프란시스코에 살고자 하는 사람은 매 순간 즉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다른 모든 집들을 제쳐두고 지금 둘러보는 아파트를 당장 구매하든지, 그냥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든지 말이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집을 구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 내용보다도 서문에 더 공감이 갈지도 모른다.

집주인이 입주자를 선택하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신원이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집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한다. 그 이유로 집주인들은 신용 체크를 먼저 하는 편인데, 지금 막 도착한 외국인들이라면 사회보장 번호도 없고 신용 히스토리도 없을 테니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증빙서류들을 준비해 가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데,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명 등은 대부분 제출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이력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취직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존심 접고 몇 번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추천서나 재정지원확인서 등등 자신의 신원을 보장할 수 있는 증명서들을 같이 준비하는 것도 좋은데, 무엇보다도 현지에서 보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이 제일 확실하다.

집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면 되는데, 하우징 관련 사이트들이 꽤 많이 있고 매물도 많기 때문에 천천히 살펴보면 된다.(Craigslist는 도시별로 서비스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로 집부터 중고물품까지 꽤 다양한 매물들이 많이 올라온다)  한인 사이트도 있지만 한국인들만 사용하기 때문에 매물이 많지 않은 편인데, 반대로 구매 관련 글을 올리면 꽤 반응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사용해본 적은 없으니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문 하우징 사이트들은 특정 지역에서 원하는 가격대의 집들을 선택 조회할 수도 있고, 당일 오픈하우스를 하는 집들을 지도상에서 쉽게 확인하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어 효율적이다. Airbnb 서비스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을 정도로 하우징은 샌프란시스코의 오래된 니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집 관련 매물을 찾는 시스템은 여러모로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시내의 집들은 다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직접 방문해보면 주변 환경이나 그 구조의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는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특히 주변 환경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샌프란시스코 안이라도 블록 하나만 건너면 공장지대 혹은 노숙자 출몰지역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언덕이 많기 때문에 통근 장소와 이동 방법 등도 미리 알아보고 함께 고려하는 것이 좋다.


나는 퍼시픽 하이츠 쪽에서 집을 구했는데, 길 쪽으로 나와서 조금만 걸으면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 오르막을 싫어해서 언덕은 피하고 싶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서 살게 되었으니,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더하자면 집은 역시 많이 살펴보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는 생각보다 넓지 않아서 어디라도 금방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여유 있게 알아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어쨌든 날씨는 좋으니 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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