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마사지(2/2)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이대로라면 끝까지 부상 없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리 마사지를 끝내고 팔로 올라가는 시점에서 상당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마사지 테크닉의 순서는 놓쳤지만) 누가 봐도 양다리의 마사지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진행된 오른쪽보다 왼쪽의 마사지 시간이 훨씬 적었다. 그것을 인지하고 나니 아픈 것이고 뭐고, 양다리의 마사지 불균형 상태가 거슬려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마사지가 끝나면 짝다리로 걷게 될 수도 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양쪽 다리에 미세한 차이는 생길 것이다. 왼쪽 허벅지가 조금 더 두꺼워질 수도 있고, 오른쪽 발바닥이 더 빨리 피곤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현 상황에 이의를 제기할 만큼 태국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 해도 나보다 근육이 다섯 배는 많은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낼 용기가 내겐 없다. 빈정상하면 내 팔다리를 휴지처럼 구겨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원인을 찾기로 했다. 양쪽 다리를 똑같이 마사지했지만, 후자가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 그것만 찾아내면 마사지사와 나,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다.

나는 주말에 자전거를 즐겨 타는 편인데, 갔던 길을 되돌아올 때 – 같은 거리를 이동함에도 불구하고 – 늘 시간이 덜 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귀갓길 효과’라고 한다. 그에 대한 가설은 학자마다 분분紛紛한데, 개인적으로는 돌아올 때 눈에 익은 길을 밟아오게 되므로 두뇌가 신경 쓸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긴장 상태에서는 매 순간 지속적으로 주변정보를 인지하고 행동 판단을 내려야 하니까. 인생도 그렇다. 어렸을 때는 늘 지루하고 시간이 안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은 점점 빨라진다. 대부분 아는 것들이고 이전 경험이 반복되기 때문에 긴장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무엇도 대부분 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마사지도 그랬을 것이다. 오른쪽 다리 마사지는 자전거의 귀행 길이요, 어른의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마사지사는 잘못이 없다. 나도 물론 그렇다. 마사지 후 다리를 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찾는 동안 그녀의 공격은 등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등 마사지를 위해 자세를 바꾸는 바람에 시선이 바닥을 향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녀의 움직임을 보며 미리 대비할 수가 없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녀는 척추 끝부분부터 마디 하나하나를 무릎으로 눌러 몸통 바깥쪽으로 힘 있게 쓸어내렸다. 이전에 마사지를 받았을 때, 이 기술은 아주 시원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녀가 무릎으로 척추뼈를 누를 때마다 고통이 척수를 타고 올랐다. 보통은 무릎으로 척추뼈 사이 골을 누르는데, 그녀는 척추뼈를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나는 눌릴 때마다 고통에 몸통을 흔들며 나지막이 신음소리를 냈다.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반신 불수가 될지도 모른다. 너무 아파 정신이 혼미해져 눌러오는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며 충격을 흡수하는 게 좋을지, 힘을 줘서 아예 척추뼈의 움직임을 최소화시켜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물론 마사지를 받을 때는 힘을 빼고 몸을 맡기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마사지라기보다는 전쟁이요, 격투기다. 적의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면 추간판 탈출로 평생 앉아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요추를 지나 흉추로 올라왔고, 척추뼈들은 던져진 공깃돌처럼 몸 안에서 흩어졌다. 너무 아팠다.

경추에 도달하자 그녀는 무릎을 거두고 손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발보다는 약할 테니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내 목도 몸통보다 약했다. 게다가 그녀의 손아귀 힘은 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내 뒷목을 한 손으로 움켜잡고 흔들자 상반신 전체가 휘청거린다.
언젠가 동물 도축의 잔인함을 고발하던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도축 직전, 불쌍하게 뒷목을 잡힌 후 늘어져 흔들거리던 닭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닭의 기분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엄청 쪽팔렸던 거야. 

‘대체 한 시간 반이 왜 이렇게 긴 거지?’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태국 사람들은 왜 이리 성실한 거야?’ 그녀는 일 분도 쉬지 않는다. 

다른 생각을 하면 고통을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에 대해 생각할까? 나는 마사지사의 자격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분은 훌륭한 마사지사일까? 적어도 내겐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힘이 너무 세서? 그런 물리적 사실은 자격과는 상관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고객은 마사지의 근육 이완 효과를 통해  찌뿌둥한 몸의 컨디션을 회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녀의 힘은 해당 효과를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히어로와 꽤 비슷한 면이 있다. 히어로도 악당만을 안전하게 때려잡아야 한다. 그 힘을 남용하게 되면 시민이 다치거나 환경이 파괴된다. 그녀도 그 힘을 고객의 근육 이완에만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내 근육을 파열시키고, 서로 붙어있어야 할 뼈들을 흩어놓았다는 거.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가 내 등을 툭툭 치며 일어나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왜요?’

나도 모르게 한국말로 물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내 등 뒤에서 팔을 뱀처럼 놀려 내 몸을 고정시키더니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나도 안다. 이때는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 정도 속도로 흔들고 있는데 힘을 뺀다면 허리가 두 동강 날지도 모른다. 대체 내가 왜 돈을 내고 이렇게 목숨의 위협을 한 시간 반 내내 느껴야 하는 거지? 차라리 돈을 벌지 말걸 그랬어. 아니 태어나지 말걸 그랬나?

그렇게 마사지 중 내 존재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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