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에 대한 단상

오늘은 키보드 이야기. 

일반적으로 키보드나 마우스는 랩탑이나 데스크톱을 살 때 딸려오는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일을 할 때도 제공되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그냥 사용했다. 키보드나 마우스를 구매하는데 돈을 더 쓰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화이트 칼라들은 하루 여덟 시간 근로하는 내내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한다. 좋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이 심미적, 기능적인 면에서 효과가 있다면, 아무리 비싼 키보드라도 그 가성비를 따라올 다른 제품은 없을 거다.(가방을 하루종일 깔고 앉아있을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라면 그냥 푹신한 방석을 구매하는 게 더 낫겠죠)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 효과는 분명히 있다는 것. 


랩탑을 살 때 덤으로 주는 멤브레인 키보드 외에 더 좋은 다른 키보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매장에 진열되어 있던 기계식 키보드를 타건했을 때였다. 찰칵찰칵 경쾌한 소리가 나던 그 키보드는 기계식 키보드의 고전 ‘체리 키보드’였고, 나는 그 키감과 소리에 반해 그것을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키보드를 계기로 계속 다른 키보드를 찾아보고 교체하다가, 무접점 키보드인 PFU(후지쯔 산하 기업)의 해피해킹 키보드를 집과 일터에 각각 마련하고는 꽤 오래 사용했었다. 토프레의 정전압식 스위치를 사용해서 기계식이나 멤브레인에 비해 조용하면서도 도각도각하는 초콜릿 부러뜨리는 듯한 키감이 재미있는 키보드였는데, 한동안은 그것보다 괜찮다고 느껴질 만한 키보드가 없었다.

해피해킹키보드 HHKB는 컨트롤과 캡스락의 위치가 기본적으로 일반 키보드와 다르게 바뀌어 있고(딥스위치를 사용해서 이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 백스페이스키와 역슬래시도 마찬가지다. 옛날 유닉스 콘솔을 사용할 즈음 원래 컨트롤 키의 위치는 현재 캡스락 위치였는데, IBM이 컨트롤과 알트키를 양쪽에 배치하면서 밑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컨트롤키가 위쪽에 있는 게 생각보다 편한데, 카피나 페이스트를 할 때 새끼손가락을 많이 움직이거나 손목을 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후 몇 개의 키보드를 구매할 때에도 컨트롤키의 위치를 변경하기 위해 펌웨어로 키맵을 변경할 수 있는 것들을 구매했었다. 

사실 다른 키보드를 사용했다가도 이내 다시 해피해킹키보드로 돌아오곤 했는데, 개중 괜찮았던 것을 한두 가지 꼽아보자면 먼저 레이저의 헌츠맨 프로 미니 Razer Huntsman Pro Mini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동사의 광축 스위치를 사용했는데, 우선 소음이 적고 키감도 쫀득하다고 할까 꽤 독특하다. 멤브레인처럼 반발력이 세지도 않고 기계식 스위치처럼 요란하지도 않으며 토프레축처럼 도각거리는 것도 아닌데,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덕분에 한 일 년 정도는 이 키보드를 사용했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COX 엔데버 오리지널 레트로 텐키리스 키보드인데, HHKB처럼 무접점키보드를 사용했는데 키압이 낮아 도각거리는 느낌에 더해 마치 구름 위를 스치는 듯한 키감을 자랑한다. 스위치의 축전량 값을 조절하여 스트로크 높이를 조절하는 기능도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음. 어쨌든 이것도 집에서 꽤 오래 사용했었다. 

이후 중국에서 여러 스위치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제작되면서 키보드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린 요즘이다. 품질도 꽤 좋고 가격도 적당하며 스위치뿐만 아니라 하우징이나 스태빌의 퀄리티도 높아 여유 있게 이것저것 바꿔가면서 사용해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rainy75나 aula F87/F99는 가격에 비해 퀄리티가 놀라울 만큼 좋은 편이어서 서너 개씩 막 사 모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묵직한 키감을 좋아해서 rainy75의 WOB 축이나, aula의 경해축이 좋았다. 둘 다 사각사각 조약돌 부딪치는 듯한 느낌의 키감인데, 정전압식 키보드보다는 스트로크 사운드 피치가 높긴 하지만 다른 클릭 축들에 비해 귀에 부드럽게 들리는 편이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12인치 뉴맥북의 나비식 키보드도 꽤 좋아해서 이후 해당 키보드가 들어간 맥북들을 계속 구매했었다. 먼지가 들어간다 등의 이슈가 있었지만, 나는 그 얕으면서도 명확한 키감이 꽤 맘에 들었다. 버전이 업그레이드될수록 점점 더 괜찮아졌는데 갑자기 단종이 되어 꽤 실망했었다. 지금도 가끔 꺼내서 찰칵찰칵 쳐본답니다. 아이패드 프로용 매직 키보드도 비슷한 키감으로 질리지 않고 꽤 오래 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패드로 키보드를 사용할 일이 없어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실 아이패드 자체를 잘 사용하지 않음. 아이패드 프로 11과 뉴 매직 키보드는 반드시 사지 않을 것이다.(갑자기?)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해 보자면 MS 서피스 랩탑 고의 키보드. 이건 아무도 모를 텐데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좋다. 혹시 돈이 남아돌면 재고처리 할인할 때 하나 구매해서 사용해 보길 권하고 싶다. CPU가 Intel Core i5-1035G가 들어가 있어서 SSD만 교체하면 지금도 쌩쌩 날아다닐걸요? 아님 말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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