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패러독스: 재료와 콘텐츠 사이의 관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내가 7개월 동안 필라테스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같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필라테스로 검색을 해보니 결과에 반환되는 포스트들이 끝이 없다. 자신의 경험을 글로 쓰는 사람은 해당 경험을 하는 모수의 1%도 안 될 텐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 걸까? 게다가 제목들을 들여다보니 – 소재는 모두 같은 필라테스지만 – 주제는 천차만별이었다. 그 중 몇 개를 들여다보자면..

남자가 필라테스를 한다고요?

우선 이 포스트는 남자가 쓴 글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남편 이야기가 나오길래 그가 필라테스를 하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다. 제목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길어져 조금 지루해하고 있는데, 작가분이 필라테스를 하러 간 장면에서 드디어 남자가 등장! 그런데, 그가 등장하자마자 바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이게 뭐지? 달라붙는 요가복을 입은 어수룩한 남자가 시작 호각 소리와 함께 공중에 매달려 있는 필라테스 기구 위를 양학선(체조 국가대표 선수)처럼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던 나는 김이 빠져버리고 말았는데… 그래도 좋아요가 95개에 댓글이 40개나 달려있다니, 부러웠다.

필라테스 7,500원에 하는 비법

딱히 필라테스를 구독하고 싶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제목은 아니었다. 하지만, 리스트에서 달랑 좋아요 10개뿐인 글 정보를 보니, 글 쓰자마자 타임라인에서 몇 명 보고는 땅끝으로 묻히는 내 포스트들이 생각나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당근마켓 거래 후기 정도랄까? 기운 내세요. 저도 기운 낼게요.

7개월간 필라테스 80회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

이 포스트를 쓰게 된 이유가 된 글이었는데, 그 정답은 에너지 넘치는 강사분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합니다. 여러분, 강사가 괜찮으면 7개월간 필라테스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나도 커피숍의 포스직원이 예쁘면 앞을 지날 때마다 –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자면서도 – 커피를 주문하게 된다. 이런 건 인지상정이죠. 

마음의 병도 치유해 주는 운동

쉰다섯 살인 필라테스 지도자, 이진희 씨에 대한 소개글이다. 글보다는 함께 첨부된 사진에 더 눈이 갔는데, 포즈를 취한 중년 여성의 쭉쭉 갈라진 다리 근육이 꽤 멋졌다. 포토샵일 수도 있지만… 이 글에서 필라테스는 만병통치약 같은 효능이 있는 액티비티로, 어떤 중년 수강생은 남편이 계속 배우라고 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고도 한다. 왜 수줍은 미소를 지은 겁니까? 내 생각엔 남편이 그동안 집에서 편하게 게임이나 인터넷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그런 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이진희 씨는 필라테스가 신체적 효과 외에도 인지능력 향상 및 치매 예방 효과까지 있다고 하는데, 이건 좀…


한참 게임이 치매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유행할 때, 워싱턴포스트지에 ‘두뇌 트레이닝 게임은 단지 두뇌 트레이닝 게임을 잘하는 데만 도움이 된다(‘Brain-Training’ games train you in only one thing: Playing brain-training games’)’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심리학 교수인 다니엘 사이먼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단련 류의 게임에 인지능력 향상이나 치매 예방효과는 없다는 거다. 치매를 예방하고 싶어 어딘가에든 기대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서 힘든 필라테스를 하게 하면 안 되죠. 나도 코로나를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매일 쌍화탕을 마신 적이 있었는데, 결국 걸리고 말았다.

그 외에도 많은 글이 있었지만, 그다지 와닿는 글을 없었다는 거. 아마 운동에 관심이 없는 내가 문제일 수도 있고, 필라테스라는 소재로는 재미있는 글을 쓰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 쓰는 성향이 너무 정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너무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뭐, 정직한 게 나쁜 건 아니니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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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필라테스 패러독스: 재료와 콘텐츠 사이의 관계

  1. 필라테스 2년 넘게 100회 이상을 했지만 아직도 저의 뻣뻣함에 좌절합니다. 운동할때 과거에도 뻣뻣했던 제 모습이 의도치 않게 회상된다는 점에서 치매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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