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결산, 멜론의 My Record

멜론에서 My Record 확인해봤어요? 꽤 재밌는데

함께 일하는 친구들 중 음악에 꽤 진심인 그녀가 내게 물었다. 나도 멜론을 꽤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기능이 있는지 몰랐었다.

“매번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연말에 결산 형태로 제공하는 서비스거든요.”


사실 그녀와 나는 음악에 있어서는 주변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종종 잘 알려지지 않은 흙속의 진주 같은 인디 뮤지션들을 공유하고, 그들의 곡을 서로에게 추천했다. 인디 뮤지션들의 설자리가 없음을, 그래서 그들이 음악 만으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 여러 다른 직업을 병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울분을 참지 못하기도 했다. 

JTBC의 리얼리티 예능인 슈퍼밴드 2 방영 중일 때는 왜 실시간 투표 수가 이것밖에 안되냐고 서로 광분했었다. 변하는 일의 자리 숫자를 알아볼 수 있다니 도대체가 말이 안 됐다. 국내 뮤지션 탑 백에 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경쟁을 시키는데 화제성이 이 정도라니, 이 나라의 음악계가 정말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건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단체 대화방에서 말 끝마다 ‘라우드핫크레이지더베슷보이스 오브 락 앤 롤’을 붙였다.(사람들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냥 묻히긴 했음) 탑 백 음악을 돌려 듣고 있는 차트의 노예들에게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인디 밴드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우리는 음악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면 또 한 번의 남북전쟁도 불사할 의지가 있었다.


“맨 앞에 한 해 동안 들은 음악의 요약이 나와요. 뭐예요?”

그녀가 가르쳐주는 대로 메뉴를 눌러 올해의 My Record 첫 페이지를 불러온 나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이건 지금까지 음악에 대한 철학을 공유해오던 친구에게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나의 최다 감상곡은 오마이걸의 번지 BUNGEE 였다. 차마 보여주지 못하고 들고 있는 폰을 빼앗아간 그녀는 나의 올해 최다 감상곡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실망과 질책을 쏟아부을 줄 알았지만,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나는 ‘반응이 왜 그래? 비난받을 준비가 되었는데.’ 하는 느낌으로 턱을 살짝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폰 스크린을 내게 돌려 보여주었다. 

우리는 동시에 약간 안심한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최다 감상곡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했다. 대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한해 음악 콘텐츠 소비 결과를 축하했다. 나는 그녀의 감상 시간을 높이 평가했고, 그녀는 나의 감상 아티스트 수에 존경을 표했다. 동료 중 누구도 우리만큼 다양한 곡들을 감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변인 디스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롭게 멜론의 My Record 공유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화면을 넘기다가 갑자기 내가 밀릴 수밖에 없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아무리 봐주려 해도 싹쓰리는 너무 탑텐인데!”

나는 ‘그래서 멀어지려 한 거잖아…’ 라고 마음 속으로 말했다.

‘가까웠다는 이야기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뭐든 ‘오마이걸’은 사랑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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