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그 이후

꽤 오래 잘 버티다가 나흘 연속 회식을 마친 지난 주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첫날은 몸이 침대 밑으로 끝도 없이 가라앉는 것 같은 상태의 계속, 이후는 감기 정도의 증상으로 일주일 간 격리 생활을 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 종료와 함께 격리 해제. 강한 구속에 익숙해졌다가 갑자기 얻게 된 외로운 해방이었다. 

그때는 말 그대로 내무반 툇마루를 못 벗어나다가 제대를 명 받고 아침에 홀로 부대 정문을 걸어 나오는 말년 병장 혹은, 손바닥만 한 독방에서 해도 못 보며 지내다가 교도소 뒷문으로 출소하는 재소자在所者 같은 느낌이었달까?(물론 교도소에 가본 적은 없음) 
여동생 내외도 삼 년 만에 놀러 왔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회사는 폭풍 같은 조직 변경을 진행했지만, 아직 그 변화가 와닿지 않는다. 

제대는 했지만 아직 사회의 구성원은 아닌, 
양쪽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마지널맨*같은 존재. 

어쨌든 그런 건 시간이 해결해 준다. 해제된 다음 날, 아직은 주변인 상태로 확진 기간에 주문해둔 책 한 권을 들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얼굴 주변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이 좋았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낯선 곳에 가서 이걸 다 읽고 돌아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주 오래전, 홍대 쪽에 아지트 삼아 붙어살던 블루스하우스라는 카페가 있었다. 간판도 제대로 안 달려있던 건물 옆 지하로 내려가면 어두컴컴한 공간 안에 담배연기가 가득했던 곳. 한쪽 벽 천장까지 닿아있던 비틀스 사진 아래 자리한 소파에 앉아 있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던 바텐더가 낡은 메뉴를 들이밀었다. 시간이 넘쳐나던 그때는 늘 그곳에서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음악을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들고 집을 나서는데 그곳이 생각났다. 그때쯤 기억 속의 장소가 그곳뿐이라니, 젠장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산 거지? 어쨌든 세상 누구도 내게 관심 없을 역병 격리 해제 첫날이니,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만약 그곳이 그대로 있다면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신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그날은 크리스마스였으니까. 

하지만, 복잡했던 홍대 주차장 거리에 블루스 하우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있을 것이라고 기대도 안 했지만, 그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은 참담했다. 나는 다시 헤드폰을 덮어쓰고는 이승환의 ‘My Story’에 이어지는 ‘내게’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랑도 믿음도
그리고 미움도,
나에겐 그랬다.

그렇더라도,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 마지널맨(Marginal Man): Marginal man or marginal man theory is a sociological concept first developed by sociologists Robert Ezra Park (1864–1944) and Everett Stonequist (1901–1979) to explain how an individual suspended between two cultural realities may struggle to establish his or her identity. (Wikipedia)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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