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동생 같던 후배가 퇴사를 했다. 금요일에 정장을 입고 출근해서는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고, 일주일 동안 휴가를 쓴 후, 3월 1일부터 새로운 회사에 출근을 한다고 했다. 갑자기 정장이라니… 안 어울려. 일에는 진심이고 술자리에선 실없던, 친구 같은 후배였다. 꽤 오래 같은 건물에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편하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나도 불러내서 커피 한잔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쉬운 마음. 하지만 그 선택은 그때즈음 자신의 고민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었겠지. 인생의 어떤 선택이든 그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길의 결과는 영원히 묻히게 되어 완전한 후회도 없을 테니 너무 자주 뒤돌아 볼 필요도 없다. 쉽지는 않겠지만 잘 해내길.
‘너 나가면 난 누구랑 술 마시냐?’
‘술도 잘 안 드시면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음.
파묻힌 거인
거의 3주째 경보를 하듯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을 읽고 있다. ‘파묻힌 거인’은 이전에 읽었던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집중이 잘 안 된다. 화려한 문장으로 독자의 멱살을 잡아끌고 가는 부류가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이 작품은 유독 초반이 지루함. 녹색 벽에 낙서 같은 일러스트가 창 안쪽으로 들여다보이는 것 같은 표지는 참 예쁜데 말이다. 지금 갑자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지 궁금해졌다.
중증외상센터
넷플릭스 드라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어서 들어갈 때마다 메인 화면에서 썸네일을 본 지 꽤 오래된 작품이다. 주변에서도 봤다는 소리가 꽤 들리고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의학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리얼한 수술 과정을 보는 게 너무 싫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기술도 좋아져서 진짜로 배를 가르고 장기를 들어내는 것만 같다.(기술의 발전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의 좋은 예) 무서워 죽겠음. 엄마는 나나 남동생 중 하나가 의대를 가면 어떨까 생각했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상처에서 피나는 것만 봐도 기절 직전이었으니 그건 안 될 말씀이었다.
어쨌든 넷플릭스에서 이것저것 뒤지다가 클릭을 잘못해서 1편을 보게 되었는데 이 드라마,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있네? 삼일 만에 여덟 편을 모두 클리어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추천이냐고 물어본다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재밌긴 함. 그리고, 주지훈 얼굴이 좀 커진 것 같음.
옷
나는 두꺼운 옷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두꺼운 바지가 싫다. 무거운 옷도 싫어한다. 내복 같은 것도 입지 않는다. 일단 움직이기 불편하면 계속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위를 안 타는 건 아닌데, 어차피 대부분은 난방을 하는 건물 안에 있으니 이동시간만 잘 버디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겠지만 집을 나서기 전에는 샤워를 하니까 몸이 데워져서 아침은 생각보다 견딜만하다. 돌아올 때는 춥지만, 곧 집에 가서 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금요일은 내가 생각해도 좀 얇게 입고 가긴 했다. 물론 아침에 기온의 변화도 확인하고, 나름대로의 치밀한 논리로 상하의를 골랐다. 집을 나설 때도 그다지 춥다는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갈 때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보는 사람마다 이렇게 입고 왔냐고 했다. 밥을 빨리 먹고 싶어서 패딩을 넣어 둔 옷장에 들르는 것을 건너뛴 건 아니냐고 물었다.(물론 밥을 빨리 먹고는 싶었음) 씩 웃고 말았지만, 참을 만했다고요!
잠
나는 불면증이다. 불면증에 대해 상세히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그렇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한두 시간은 계속 뒤척거리게 된다. 인터넷을 보고, 책을 보고, 게임을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심지어는 점점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이게 불면증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불면증임?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인간이 잠드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30분에서 한 시간이며, 그 안에 잠들지 못한다면 마음의 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불안, 우울 등의 원인이 있을 수 있으니 병원 진료를 받아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인생을 곱씹으면서 진지하게 살아가는 편은 아니어서 스트레스가 많은 편은 아니다. 불안, 우울 같은 것도 잘 모름. 그렇다면 대체 왜 나는 잠을 못 자는 거야?
‘혹시 커피를 많이 마셔요?’
‘응. 남들 마시는 것만큼은 마시는 것 같아.’
‘몇 잔?’
한 세잔?’
아침에 와서 한잔, 점심 먹고 한잔, 오후에 졸리면 한잔. 누구나 다 이만큼은 마시는 거 아닌가?
‘그건 엄청 많이 마시는 건데요?’
친구는 커피 때문일 거라고 했고, 나는 속는 셈 치고 하루동안 커피를 입에 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집에 가서 눕자마자 잠들어버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