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4-20 그림일기

유투버 중에 복고맨이라고 오래된 음악가와 음악을 소개하는 클립을 올리는 이가 있다. 요즘에는 릴스도 만들어 올리는지 꽤 자주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입에 침을 가득 채우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말하는 동안 침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을 것 같아서 콘텐츠에 집중할 수가 없음.

금요일에 대학 때 후배와 한잔 했다. 1차를 대충 끝내고 나왔는데 좋은 곳이 있다고 가자고 한다. 누군가와 전화를 계속하면서 신사역 근처 골목을 한참 뒤지더니 결국 찾아낸 그곳은 밴드가 있는 노래하는 주점이었다. MBC에서 트럼펫을 30년 동안 연주하셨던 분, 일렉을 치시는 그분의 아들, 전국 노래자랑에서 30년이 넘게 드럼을 치셨던 분들이 세션으로 서로 잼을 연주하기도 하고, 노래 좀 하는 손님을 앞으로 불러 밴드연주를 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들의 내공이나 합이 장난 아니어서 오랜만에 생각지 않은 귀호강을 했다는 거. 플루겔 혼은 아니었지만 트럼펫의 ‘Feel So Good’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다른 손님들이 노래를 부른다고 뛰쳐나오지만 않았다면 후반부의 일렉기타 극락파트까지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친구 하나가 너무 흥에 겨운 나머지 ‘Enter Sandman’을 부르지만 않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자전거를 타고 생각 없이 평소 안 가던 길로 달리다 보니 학동사거리까지 왔다. 목이 말라서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는데, 한 남학생이 걸어 들어와 옆에 자리를 잡는다. 동그란 테이블이 늘어져 있는 자리였는데, 앞의 테이블에 책과 태블릿을 올리더니 다른 옆의 테이블을 끌고 와 붙이고는 커피와 스마트폰을 그 위에 올린다. 참 싸가지없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놈들은 공부도 못함.

난청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볼륨을 낮추고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음악을 듣는 게 재미가 없어졌다. 작은 볼륨으로 듣는 음악은 뭐든 다 비슷하게 들리고 매가리도 없다. 그런 이유로 점점 음악을 안 듣게 됐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게 착각이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그런데 금요일에 그 노래하는 주점을 나와 집으로 택시를 타고 가며 그 여운 속에서 Tears For Fears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를 풀볼륨으로 들었는데 너무너무 좋았다. 이어져 나오는 르세라핌의 Come Over도 너무 흥겹고 멋졌다. 어라? 그건 아닌데. 이효리의 레드카펫에서 김고은이 불렀던 ‘Make You Feel My Love’는 아델의 것보다 두 배는 더 좋았다니까요?

지금 다시 김고은의 ‘Make You Feel My Love’를 찬찬히 들어보고 있는데 이건 진짜 잘 부르는 거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예쁨이면 예쁨.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그대여, 이 상황 속에서도 그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나요? 못생기고, 노래도 못하며, 심지어는 연기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수두룩 할 텐데 말이다. 
사실 그녀는 노래도 잘 불렀지만, 음향 세팅의 몫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보컬이 마치 내 귀에 대고 부르듯 들리도록 다른 악기와의 콘트라스트에 엄청난 신경을 썼다. 저런 마이크에 대고 부를 기회가 있다면, 네 목소리에 네가 놀랄 수 있음. 물론 예쁨과 연기는 조금 떨어지겠지만… 그런 이유로 보컬들은 공연 전 음향실에서 대역별 볼륨세팅을 미리 수십 번 확인하고, 마이크도 스스로 들고 다닌다. 장인은 도구 탓 안 한다지만, 가수는 예외임.

금요일에 같이 한잔 하던 친구도 음악을 꽤 좋아하는 친구여서 노익장 넘치는 무대에 함께 감동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 친구의 플레이리스트가 궁금했다. 고등학교 때는 같이 메탈을 엄청 들었으니까. 그래서 플레이리스트를 스크롤시켜 사진을 두 컷 정도 찍었다. 음악적 내공이 있는 이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보는 건 마치 지식인의 책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니까. 오늘 찬찬히 그 플레이리스트의 곡을 들어보고 있는데, 여전히 하드 한 음악을 줄곧 듣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너도 난청 확정이다. 그런데 그중 Twenty one pilots란 그룹의 ‘Christmas Saves The Year’이 귀에 쏙 들어와서 하루 종일 듣고 있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Posts created 542

Related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egin typing your search term above and press enter to search. Press ESC to cancel.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