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23 일기

여름휴가

내가 방문한 시기는 올해 여름 유럽의 숙명과도 같던 그 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이탈리아의 남부는 어떤 문명의 수혜도 없이 맨 몸으로 그 더위를 마주하고 있었고, 그때 그곳에 있던 나도 그 순례의 일원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공간의 사람들은 생각 외로 그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휴양지의 햇빛은 – 그 강도와는 상관없이 – 현지인들에게는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천연자원이고, 여행자들에게는 콘크리트벽 안에 갇힌 생활을 잊게 해주는 완벽하게 건조된 여백 이어서일까? 에어컨이 있었지만 마치 작동하지 않는 것 같았던 치르쿰베수비아나 폭염기차에서도 태평한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더워 어쩔 줄 모르던 나.

프로젝트

계속 반복되는 테스트 이터레이션에 지친 동료들과 프로젝트 인력들은 냉정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다. 불완전했던 초기 테스트 과정부터 참여했던 동료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비즈니스를 전부 파악하기 힘든 개발자들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직시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롤은 외롭기 그지 없다. 생각보다 영향도가 큰 이관이어서 마음속의 Go/No-Go 기준을 계속 썼다 지웠다 했는데,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어쨌든 1차 이행 완료.

에이전트

아무도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AI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있다. 내년에 잘 사용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작업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대체 저 사람이 뭘 하고 있는 거지?’하고 있어서 조금 슬프다. 간단하게 구성하려 했지만 하다 보니 점점 덩지가 커지고 있는데, 개발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외부인력은 이 구조가 납득이 안 간다고 하니 난처한 것도 있고… 20년 넘게 알고리즘이 주도권을 쥐는 개발을 수행해 왔던 분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나는 요즘 남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게 너무 귀찮은 상황이라 말이 곱게 안 나온다.

친구

미국에서 지내던 친구가 얼마전 다시 귀국을 했다. 인사 카톡을 하다가 ‘한번 봐야지?’ 했는데, 언제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녀. ‘내일?’ 했더니, ‘ㅇㅋ’ 한다. 그녀는 ‘OO 물어볼께요’ 하며 다른 친구를 초대했고, 바로 ‘내일 가능, 몇시에요?’라는 확답을 받음. 나는 ‘OO 불러볼까?’ 하고는 다른 친구를 끌어들였고, ‘내일 바쁘지만 퇴근하고 집에는 가야 하니까.(만나려는 곳이 그의 집 근처)’라는 그의 대답으로 다음날 모임이 확정. 이런 속도는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봤음.

가족식사

아버지의 생신이어서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엄마는 뭔가를 드실 때 항상 ‘내가 요즘 양이 줄어서 적게 먹는데..’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오늘은 그게 도를 넘어서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엄마는 그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진짜 많이 드셨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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