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즈음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프리퀀시 한 바닥이 모였다. 나는 보통 스타벅스에는 혼자 가기 때문에, 프리퀀시 챌린지가 시작된 이후에 – 논바닥에 일렬로 촘촘히 모를 심듯 – 성실하게 열일곱 번 매장을 방문했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나는 꽤 성실한 편이다. 게으르지만, 성실하다.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장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프리퀀시를 다 모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선물을 받는 느낌으로 – 가장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골라 가방에 넣어 올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갑자기 선물을 받는 것도 벅찬데, 선택지까지 있다니… 나는 늘 빈 노트가 많은 다이어리를 골랐고, 회의 때마다 그 빈 노트에 그림을 그렸었다.
‘이 다이어리로 주세요.’
나는 앱을 열어 프리퀀시 페이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네? 고객님, 혹시 예약하셨을까요?’
그녀는 올해부터 다이어리 수취가 예약제로 운영되어 앱으로 미리 픽업 날짜와 매장을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덕분에 이번에는 바로 집어오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다이어리를 받아올 수 있었다. 물론 이런 변경은 스타벅스 입장에서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세스의 진화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참 김이 새 버렸다는 이야기.
집에 와서 책상 위에 다이어리를 놓고 2022라고 적혀있는 띠지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정체불명의 집단에 의한 미국 핵공격으로 LA 전체가 암흑도시가 되고, 덕분에 세계 경제가 무너져서 식량 부족 사태가 전 세계에 만연했던 게 바로 2022년이었는데… 공상과학소설 혹은 영화에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시대와 동일한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니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다행히 아직 핵 미사일도 폭발하지 않았고, 세계 경제도 –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 괜찮은 편이라는 기록만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