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 소설도 비슷하긴 하지만, 유독 등장인물이 많은 일본 소설을 읽으면 사람이 헛갈려서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 집중하지 못해서일 테지만, 작정을 하고 다시 읽어도 여전히 헛갈렸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뭐가 문제일까?
일본어는 이름도 성-이름 순으로 적고, 어순도 우리와 같기 때문에 이해가 용이할 것 같지만, 실제로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다른 부분이 꽤 있다. 그중 제일 헛갈리는 부분이 바로 호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이름을 호칭으로 사용하지만, 일본에서는 성과 이름을 모두 호칭으로 사용한다.(물론 우리도 ‘김 씨’라고 부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함) 일본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성이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크게 구분이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3인칭으로 주인공을 지칭할 때도 성과 이름을 모두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헛갈렸다. 아니 요즘도 여전히 헛갈린다.
‘스즈키 씨 오늘 괜찮으세요?’
뒤에서 미야코 씨가 묻자 효이치는 뒤돌아보며 이야기했다.
‘아. 코사카이 씨. 네. 오늘 괜찮아요.’
이 문단에는 ‘스즈키 효이치’와 ‘코사카이 미야코’, 두 사람뿐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도 소설의 도입부라면 ‘아, 젠장 미야코가 물었는데 왜 코사카이에게 답하는 거야?’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단어들이 모두 생소하기 때문에, 그 뒤에 한국 조사가 붙으면 또 헛갈린다. 예를 들면, ‘치에코다.’ 하면 치에코 씨라는 건지 ‘치에코다’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인 건지 혼란스럽고, ‘쓰야기가’ 하면 ‘쓰야기라는 사람의 주격인지 이름이 ‘쓰야기가’인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게다가 일본의 성은 지명이 많아서 둘을 헛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이 결혼이라도 한다면 더욱더 복잡해진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부부 동성제를 법으로 제정하고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결혼 후 둘의 성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성을 따라도 되고 그 반대도 괜찮지만, 90% 이상 남자의 성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의 경우 커리어의 연속성을 위해 사회에서는 이전 성을 계속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하는데, 이정도면 법은 대체 왜 만든건지 궁금해진다.
어쨌든 이해를 위해 상황을 구성해 보자. 위의 ‘스즈키 효이치’군과 ‘코사카이 미야코’ 양은 오랜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하게 되었다. 둘은 사내 커플이었으며, 미야코는 회사에서는 동료들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전의 성을 사용하기로 했다. 물론 집에서는 남편의 성을 따른다. 오늘은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의 첫 출근 날이다.
‘스즈키, 어서 일어나. 일찍 출근해야지.’
‘알았어. 스즈키’코사카이는 일찍 일어나는게 늘 어렵다. 결혼 전에도 그랬다. 효이치의 어머니는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서는 위층으로 올라와 문을 벌컥 열며 이야기한다.
‘새 아기 아직 안 일어난 거니? 미야코 양! 빨리 일어나세요!’
‘어머머, 문을 왜 갑자기.. 네네 어머님.’미야코와 효이치는 대충 아침을 먹고 회사로 출발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지각은 면한 것 같다. 닫히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겨우 잡아탄 스즈키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봐 효이치. 드디어 긴 휴가가 끝났구먼? 스즈키 양 기분은 좀 어때?’
‘앗, 치에코다. 회사에서는 그대로 코사카이라고 불러줘.’
‘치에코 군한테 이야기하는 거야? 아니면, 나 치에코다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이건 좀 억지인가? 어쨌든 대충 감은 잡을 수 있겠지만,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어. 이봐 스즈!’
이런 식으로 애칭(‘스즈’는 ‘스즈키’의 애칭)까지 나오면 더 복잡해진다. 아무런 설명도 없는 ‘스즈’와 ‘스즈키’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냥 책을 덮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 미스터리 물이나 수필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꽤 있어 즐겨 찾는 편인데, 언제부터 구매 전에 대충 훑어보면서 등장인물 수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주인공이 많으면 내게 더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 다른 나라 책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