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한 지 한 2년쯤 되는 마우스가 있었는데 갑자기 드래그가 풀리거나 클릭이 잘 되지 않았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마우스 버튼에 사용되는 스위치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기판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교체하는 것쯤은 할 수 있겠다 싶어 검색 내용을 참고해서 바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우스용 스위치를 구매했다. 주문한 스위치는 이틀 만에 도착했고, 나는 스위치가 도착하자마자 인두를 가열해두고는 마우스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나사를 열 개 정도 풀고 바디와 배터리 소켓을 차례로 들어내니 작은 녹색 기판을 분리해 낼 수 있었고, 그 기판에는 세 개의 다리가 달린 작은 스위치가 납땜되어 붙어있다.
처음에는 ‘다리 세 개의 납을 녹여 스위치를 들어내면 되겠지’ 하고 간단히 생각했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납은 녹이자마자 바로 다시 굳어버려서, 세 개의 땜을 한꺼번에 녹여 들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손은 두 개뿐이라 인두를 댄 상태에서 기판과 스위치를 분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손이 세 개라 하더라도 붙어 있는 세 다리의 납땜을 한 번에 녹이기는 쉽지 않겠지. 제대로 분리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인두로 각각 스위치 다리의 납을 동시에 녹이며 스위치를 기판에서 떼어낼 필요가 있으니, 최소한 다섯 개의 손과 세 개의 인두가 필요한 거다. 다섯 개의 손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해도, 인두를 세 개나 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역시 ‘공장 자동화된 대량생산이라는 건 엄청난 것이었구나’하게 되었지만, 내장을 다 내어놓고 있는 마우스 앞에서 감탄만 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나는 어르신을 찾았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하자 어르신은 가만히 기판을 앞뒤로 들여다보시더니 조금 고민을 하시는 듯했다. 역시 마우스의 스위치 교체는 연륜보다는 손 다섯 개와 인두 세 개가 현명한 해결방안인 걸까? 하지만 어르신은 곧 생각을 정리하시고는 내게 인두를 가져와 연결하라고 하셨다.
‘기판에 땜 되어있는 부품을 기판의 변형 없이 제거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그건 나도 몸으로 경험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보통은 납 흡입기를 사용해서 녹인 납을 제거해줘야 해. 그러면 부품만 들어내면 되거든.’
아, 그런 게 있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납 흡입기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써야지. 우선 스위치 다리가 너무 길어서 납을 녹인 후 다리를 빼기도 전에 다시 납이 굳어버리게 되니까 아예 잘라버려야겠어.’
어르신은 니퍼로 세 개의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게 잘라내셨다. 나는 매번 방바닥으로 튀는 다리 끝 부분을 매의 눈으로 좇아 집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것도 안 하면 내가 너무 쓸모없는 인간 같아서였다. 칭찬을 해주실 만도 했는데 제대로 못 보셨는지 별 말이 없으신 어르신. 쓰레기통에 버릴 때 ‘휴, 세 개 다 찾아서 다행이다.’ 정도의 혼잣말을 할걸 하고 후회하고 있는데, 어르신은 달궈진 인두로 땜을 녹이면서 스위치를 분리해보고 계셨다. 하지만, 여전히 쉽게 분리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리 세 개가 너무 촘촘하게 붙어 있어서 아무래도 납을 제거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납 흡입기는 없다.
‘거기 납을 줘봐. 납을 더 녹여 붙여서 덩어리를 크게 만들고, 관성으로 떼어 내야겠어.’
이건 좀 신박한데? 창의적인 생각은 젊은이들에게 기대한다는 중년들이여. 당신들은 젊었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그냥 인정하라! 뇌세포가 퇴화해서 더 이상 창의적이지 못한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어르신은 인두로 납을 녹여 붙이시더니 책상에 기판을 세게 내리치셨다. 몇 번 내리치자 거짓말처럼 납이 떨어져 나가고, 기판의 구멍에는 다리만 보였다. 나머지도 모두 동일하게 처리하니 스위치는 거짓말처럼 기판에서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대단했다.
‘자, 새 스위치 줘봐.’
어르신은 능숙하게 납을 인두에 녹여 붙이고, 인두에 묻은 납을 스위치 다리 쪽에 쓱 문질러 기판과 고정시켰다. 교과서에서 봤던 납땜의 정석 그대로였다. 어르신은 척척 세 개의 다리를 하나씩 기판에 고정시켜 나갔고, 나는 나중에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도록 모든 움직임을 숨도 안 쉬고 지켜보았다. 작업을 마친 어르신은 새 스위치로 교체된 기판을 건네주시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보시던 유튜브 클립을 플레이시키셨다. 쿨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바로 자리로 돌아와 널브러져 있던 스위치 부품들을 재조립했다. 나의 나사 조이는 속도도 빠르고 경쾌했지만 우울함을 벗어날 순 없었다. 나사를 빨리 조여봤자, 납땜된 스위치를 기판에서 제대로 제거도 못하는 인간인 것이다.
허무한 상태로 조립을 마치고는 마우스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그런데, 아예 마우스 커서가 보이지도 않는다. 마우스 전원을 껐다 켜고, 동글을 재 삽입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어르신이 납을 떼어내기 위해 기판을 책상에 세게 내리치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큰 소리가 났었다. 그 정도로 내리친다면 멀쩡한 마우스도 망가졌을 것이다.
나는 나중을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납 흡입기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