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하기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아직 시차 적응을 못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국제적인 인재가 되기는 틀린 모양이다. 며칠 지나면 금방 적응이 되겠거니 했는데, 이제는 아예 새벽에 잠들어서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자버린다. 오늘도 갑자기 청소하는 분이 덜컥 문 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청소는 어떻게 할까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잠결에 듣고는 조금 있다가 해달라고 했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조금 있다가라고 하면 언제쯤인가요?” 한다.

“네, 네. 한시에 부탁드려요.”라고 하니 그녀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문을 닫고 나간다. 시계를 보니 오후 두 시였다.


대충 씻고 밖으로 나가 얼마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두었던 은행으로 향했다. 지난번 만들어 둔 계좌에 이체한 돈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신용카드를 신청했다. 담당자는 발급은 일주일 정도 걸리고, 발급되면 많이 사용하라고 조언해 준다. 

“많이 사용할수록 신용이 올라가요.”

사용한 만큼 제대로 갚아내야 신용이 올라가는 거겠지. 어쨌든, 이제 집을 보러 가는 일만 남았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구하기 위해 꽤 많은 메일을 보냈었는데, 어제 처음으로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은 그 집을 보러 가면 된다. 정착을 준비한다는 건 안정된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는 다르다. 최신 영화 정보를 보거나 잡지를 읽는 것보다, 집을 구하고, 계좌를 개설하고, 가스를 신청하는 것이 먼저다.

이곳은 버스를 타고 조금만 달려도 도시 냄새가 금방 사라진다. 마켓 스트리트만 벗어나면 주변은 낡은 단층 건물뿐이고 거리도 거리도 한산해서,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다니다 보면 서울보다 훨씬 작다는 – 실제 면적은 비슷함 – 생각이 든다. 미디어에서 보는 샌프란시스코는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여행자들이 가득한 생동감 넘치는 도시지만, 실상은 읍내만 화려한 시골 마을 같다는 거.  

며칠 동안 다운타운에서만 돌아다니는 바람에 정신이 피폐했는데, 집을 보기 위해 도착한 롬바드 스트리트는 한적한 주택가라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주인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중국 할아버지였는데 내내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스튜디오도 낡긴 했지만 깨끗해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집을 둘러보면서 내가 살기 위한 집을 고를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몇 군데 조금 더 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하고는 집을 나와 주변을 좀 걷다 보니 작은 컵케이크 가게가 보였다.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무작정 들어가 컵케이크와 유기농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 매일 들고 나왔지만 한 번도 꺼내 들지 못했던 –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져서 카페를 나와 주변을 걷다 보니 골목 안쪽에 펍 형태의 식당이 보인다. 조금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대체 이 사람들의 직업이 뭔지 궁금해졌다. 바 안쪽의 직원에게 혼자 앉아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싱긋 웃으며 ‘당연하죠. 바에 앉아요!’ 한다. 그러겠다고 하고는 메뉴를 받아 들었는데, 사진도 없이 요리 이름만 적혀있어서 도무지 뭘 주문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여행자를 위한 친절은 개나 줘버린 듯한 메뉴판을 내려놓고는, 웨이터에게 요리와 맥주 추천을 부탁했다.(나는 술의 종류도 잘 모름.) 웨이터는 근처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오는 맥주가 정말 굉장하다면서 추천해 줬다. 

맥주는 굉장했고, 문어 요리는 너무 짰다. 어쩌면, 안주가 너무 짜서 맥주가 굉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주를 남겨둔 채로 맥주를 들이켜면서 

이 정도면 살만한데?

하고 중얼거렸다. 


* 인터넷에 집을 구하기 위한 많은 사이트들이 있겠지만 저는 친구의 추천으로 Craigslist https://sfbay.craigslist.org/ 를 사용했었습니다. 꽤 오래된 사이트로 url로 구분하여 도시별 독립적인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데, 집 외에도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합니다.(저는 무서워서 중고 물품 거래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친구 이야기로는 게이 파트너를 찾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친구야, 너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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