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

생활에 필요한 준비물이 뭐가 있지?

짐을 붙이기도 귀찮고 이민가방 한가득 들고 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옷가지 몇 개와 노트북만 넣었더니, 아침 출근 가방 챙기는 시간 안에 이주자 짐 정리가 끝나 버렸다. 귀찮긴 하지만, 항공권, 호텔 그리고,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셔틀까지는 예약을 해두었다. 길을 잘 못 찾는 편이기 때문에 최종 도착지까지의 교통편 정도는 미리 준비해두어야 마음이 편하니까. 집은 호텔에 머무는 일주일 안에 구하기로 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늘 쉽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나는 보통 약속시간에 아주 일찍 도착하거나 혹은 상당히 늦는 편으로, 이번에는 공항에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이 곳에는 늘 늦게 도착해서 분주하게 움직였던 기억뿐인데, 이번에는 한 시간 이상 시간이 남아 버린 것이다. 한 시간을 앉아있는 것도 힘든데, 비행기 안에서 열 시간 이상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지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오른 후 자리에 앉아 좀 졸다가 식사 두 번 하고 나니 바로 샌프란시스코. 시간은 늘 내가 예측한 속도와는 다르게 움직인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은 지은 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오래된 중세 도시 같은 느낌으로, 지나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주변의 매장들도 모두 적당히 기분 좋게 낡아있다. 물론 유적지 같은 유럽의 공항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미국행 비행기는 대부분 대형이라 승객이 상상 외로 많기 때문에 공항에 내려 출입국 사무소까지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걸어야 한다. 만약 화장실에라도 들르게 된다면 출입국 사무소 앞에 보아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는 승객들 때문에 절망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절대로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출입국사무소를 지나 공항 바깥으로 나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예약해 둔 셔틀의 탑승 장소를 찾을 수가 없다. 지도를 보고도 못 찾는데, 문장 두줄을 보고 제대로 찾을 거란 기대도 안 하긴 했다. 주변에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있어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Upstairs, cross the road. 한층 위, 길 건너.”

쿨한 흑인 직원의 간결한 안내 덕분에 셔틀 대기장소를 어렵게 찾을 수 있었다. 개인 인증 후 셔틀에 올라탔더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잠이 쏟아진다. 조금 졸다 깨보니 벌써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들어서 있다. 시내의 거리나 건물도 공항처럼 적당하게 깨끗하고 적당하게 낡아있다.

셔틀에서 내려 납작 엎드린 거북이같은 여행가방 두 개를 질질 끌고 호텔 로비로 걸어 들어갔다. 프런트 앞에서 예약번호를 제시하며 전망 좋은 방으로 달라고 이야기했더니, 웃는 표정으로 키를 내어준다. 올라가 보니 호텔 방 창 밖으로 건설현장만 보였다. 그가 왜 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보이는 게 건설현장이든, 견우직녀의 오작교든 크게 상관없었던 게, 바로 침대에 쓰러져 세 시간을 내리 자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보이는게 별 것 없어서 그냥 잤을 수도 있다.(기억이 잘 안 남)

어쨌든, 무사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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