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최근 오랜만에 진지하게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고, 그런 기분은 오륙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때 사귀는 사람을 알고 있었지만 진지하게 사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쨌든, 그녀는 그와 썸을 타게 되었지만, 좀처럼 관계가 진전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때 남자는 사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했단다. 그녀는 그 이유가 자신이 평소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조금 더 말끔한 피부를 갖기 위해 리쥬란 시술을 받은 다음 날 즈음이었다고 한다. 시술을 받아 조용히 집에 있던 그녀는 그에게 진지함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빨리 자신의 진지함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며칠 후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전에 전달해야만 했다. 그래야 즐겁게 여행을 다녀올 수 있을 테니까.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아직 진정되지 못한 얼굴은 철쭉꽃이 핀 들판처럼 울긋불긋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역시 자신의 진지함을 전달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더 컸다. 그동안 다른 여자가 진지하게 그 남자에게 다가간다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바로 차를 몰아 그의 집 앞으로 갔다. 그리고, 갑자기 불려 나온 남자에게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남자는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한 표정이었다고 했다. 표정이 어떻든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그녀에게 그 남자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날 고백에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던 건 아마도, 자신에게 진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던 게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는데, 썸만 타다가 관계가 종료되었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녀는 며칠 동안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는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전날, 우리에게 식사하며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런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그녀는 진지했나 보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그녀는 술술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먼저 내 이름을 여러 번 쓰고, 상대의 이름을 수직으로 포개어 거꾸로 쓰는 거예요.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 주술체로 원하는 일을 적으면 된대요.
그녀는 인터넷을 뒤졌다고 한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그녀는 외국의 한 타로점 사이트에서 헤어진 사람과 다시 잘 되는 주술부적을 만드는 방법을 찾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요즘에 그런 게 어딨어. 어쨌든, 그녀는 진지하게 인터넷 주술사 사이트의 부적 만드는 방법을 정독했고, 포스트잇에 정성스럽게 내용을 채워나갔다. 우선 그와 자신의 이름을 포개어 포스트잇의 안쪽을 가득 채우고, 주변을 빙 둘러 ‘그가 내게 전화를 한다’라는 주술을 흘려 적었다. 우리는 너무 소박한 그녀의 주술에 마음이 아팠다. 저 나이에 저렇게 순진할 수가 있다니… 한심했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속옷 안쪽에 넣고 다녔다고 했다. 심지어는 지금도 넣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것이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여줄까요? 잠시만요.’
하고 화장실로 가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그 부적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회사에서 떨어뜨렸을까 봐 거의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 남자는 함께 일하던 동료였기 때문에 치명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 부적은 그녀의 옆구리에서 발견되었고, 안정을 되찾은 그녀는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다는 것에 또다시 놀란 우리. 게다가 글씨를 너무 못써서 한번 더 놀랐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일부러 그렇게 썼다고 했다. 필적보다는 자신의 이름이 더 위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그런 부적은 되도록이면 베개나 이불에 넣어두라고 충고했는데, 베개에도 이미 넣어두었다고 해서
다 이상 해줄 조언이 없었다는 이야기.
다 읽어보니 이것만큼 적절한 제목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