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신작: 소울 Soul

아래는 픽사의 애니매이션: 소울 Soul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늘도 바쁘게 보내셨나요? 뭔가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 종일 숨이 턱 막히셨을 수도 있고,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들로 정신없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기사나 글 한조각도 보지 못하고는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창 밖으로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마주하신 건 아니고요?

잠깐 하시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오늘 하루를 글로 쓴다면 어느 정도가 될까?’ 하고 말이에요. 아마 대부분은 반복되는 생활 중 오늘에만 해당되는 뭔가를 적어내기가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사실은 저도 그래요. 그리고,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해온다면요?

당신은 왜 살아가시나요?

뭔가를 해내기 위해서 살아가신다고요? 그렇다면, 왜 그것을 해내야 하는 건가요? 그리고, 정말 그것이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나요? 그건 그렇고… 지금 행복하신가요?

언젠가부터 픽사는 인간 그리고, 그 너머에 대한 메커니즘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인 ‘몬스터 주식회사’나 감정 컨트롤을 다뤘던 ‘인사이드 아웃’이 인간의 현생과 관련 있는 상상이었다면, 비교적 최근작인 ‘코코’나 이번작, ‘소울’은 삶과 그 이후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번 작인 ‘소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면,

주인공인 무명 뮤지션, 조 가드너는 재즈클럽에서 멋지게 공연하겠다는 꿈을 가진 중학교의 재즈음악 교사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꿈을 이루게 되기 직전 맨홀에 빠져 사망하게 되고, 태어나기 전 영혼들이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그레이트 비포’라는 곳에서 22호를 만나게 되는데…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사실 재미로만 봤을 때는 이전작들만큼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인사이드 아웃’이나 ‘코코’의 다이너미즘은 최고였잖아요? 하지만, 이 작품은 제가 지금까지 감상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중 가히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네요.

조 가드너가 떨어진 ‘그레이트 비포’라는 곳은 태어나기 전 영혼들은 자신이 태어나야 하는 열정 Spark을 찾는 곳입니다.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멘토들도 있고요. 비로소 그것을 찾은 영혼들은 지구로 내려가 인간으로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22호는 수천 년간 지상으로 내려갈만한 열정(혹은 재능)을 찾지 못했어요. 자신의 존재가치를 만들어낼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웠던 겁니다. 하지만, 조 가드너는 달랐습니다. 자신의 열정은 음악이며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죠. 그런 이유로 조는 22호가 삶의 열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게 되고, 22호는 조의 공연을 돕기 위해 두려웠던 지상에서 얼마 동안을 보내게 됩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22호는 자신의 Spark를 채우게 돼요. 하지만, 조 가드너는 꿈꾸던 공연을 결국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되죠.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우리. 살아간다는 게 뭐죠? 무언가를 해내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산 것일까요? 그렇지 못할 거라면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건가요?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인생에서 무수히 흘려보냈던 평범한 일상이 그를 지탱해주고 또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조 가드너는 공허함을 안고 집에 돌아와 22호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물건들을 보며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삶의 가치라는 것도 말이죠.


얼마 전에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파서 대충 약국에서 타이레놀을 사 들고는 집으로 들어왔죠. 정작 약은 털어 넣지도 못한 채 바로 시체처럼 누워있는데, 누군가가 머리 옆을 해머로 탕탕 치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 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가 잠이 들었나 봐요. 한두 시간 정도 지났었나? 눈을 떠보니 창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어요. 그 순간 열린 창으로 바람이 훅 밀려들어왔습니다. 시원했어요. 머리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파트 앞의 놀이터로 나가 칼 같은 겨울바람 속에 다시 한참을 앉아있었어요. 그렇게 있다가 배가 고파져서 근처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니까요?

‘살아있으니 좋네.’

살아있는 건 좋은 것. 뭐 딱히 내가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거나 공을 세운 것도 아니고, 뭔가 남다른 목표를 달성한 건 아니지만. 단지 아팠던 머리가 나았을 뿐이지만, 저는 살아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Hey, like you said about jazz. I was jazzing.
이봐, 네가 재즈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나도 재즈를 한 거라고.

이발사 친구를 대체 어떻게 다룬 거냐는 물음에 22호가 위처럼 대답했었죠. 그때 조는

music and life operate by very different rules.
음악과 삶은 서로 다른 규칙으로 움직인다고!

라고 받아쳤습니다. 꿈, 열정의 대상을 평범한 삶과 유리시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구로 돌아가기 직전 불안해하는 22호에게 조는 이런 말을 해줍니다.

You’re pretty great at jazzing.
너는 이제 살아가는데 아주 능숙하잖아.

저는 이 말장난이 참 좋더라고요. 마지막에 지구로 다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답했던 이 문장과 함께 말이죠.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나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갈 겁니다.

자, 여러분들도 매 순간을 소중하게 살아가실 준비가 되셨나요? 사람이라는 게 누구나 쉽게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은 하루 이틀만 지나면 영화고 뭐고 정신없는 일상에 다시 욕이 튀어나오게 되겠지만요. 이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시는 순간만큼은 주인공 조의 환생에 버금가는 행복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직 안 보신 분들, 부럽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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