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윙클의 신부

‘립반윙클의 신부’는 러브레터의 감독 이와이 슌지의 소설입니다. 배우 쿠로키 하루를 CM 오디션에서 만난 후 그 이미지를 간직한 채 집필하고, 다시 쿠로키 하루를 주연으로 영화화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도 읽는 내내 표지의 그녀와 이야기의 주인공 나나미가 너무 자연스럽게 겹칩니다.

하루하루를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계약직 교사 나나미에게는 플래닛이라는 인터넷 서비스가 유일한 위안입니다. 그녀는 이 서비스 안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죠. 결혼식에 부를 사람들이 많지 않았던 그녀에게 SNS 친구 람바랄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아무로를 소개해 주고, 그를 통해 고용한 거짓 가족들 덕에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여러 사건이 맞물려 일어나면서 그녀는 순식간에 이혼하게 되고, 길거리를 떠돌다가 다시 아무로에게 고용됩니다. 그렇게 거짓 가족 역할을 하며 AV 여배우인 마시로와 만나게 되고,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이와이 슌지 감독의 냉소적인 시선은 책의 종반부까지 시종일관 변함이 없습니다. 여린 주인공이 헤쳐나가기엔 무리라고 생각되는 만만치 않은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상처와 절망의 시간. SNS가 만연한 요즘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것은 실제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친구만 못하다고 하지만, 이미 현실에서조차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친구를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귀여운 표지만으로는 산뜻하고 귀여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지만, 작가는 혹독하게 나나미를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건들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처음 사실적 공간에서 교감하게 된 친구 마시로조차 자신을 순장의 대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은 독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삶은 계속되고, 삶이 계속되는 한 희망은 – 비록 실낱같더라도 –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간다는 건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건 ‘도전’이라는 타이틀로 거창하게 맞서나가지 않더라도, 단지 살아가는 것만으로 기특하고 칭찬받아야 할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루어 놓은 것들도 중요하겠지만, 내가 지금 땅을 딛고 서 있다는 것도 못지않은 의미가 있겠죠.

프리템포의 ‘Imagery’로 시작해서 데이빗 보위의 ‘Where are we now’로 끝나는 라디오 방송 같은 소설

‘립반윙클의 신부’입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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