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023-07-30

요즘 하는 일이 바빠서 다른 것들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마치 움직이는 열차 내부의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것처럼. 정신없다가 문득 창밖을 보면 비가 내리고 있고, 다시 잠깐 바깥을 보면 작렬하는 햇살에 주변이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듯 현실감 없이 ‘비가 오네’, ‘한 여름이구나’ 하며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몇 개월이 훅 지나가버렸다. 

‘이제 장마가 끝났대요.’

함께 일하는 친구가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우기雨期래요.’

어제 일기예보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태풍이 오겠지.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칠월을 맞이하기도 전부터 가을의 문턱까지 비와 함께라니.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비가 싫은 건 아니지만, 친한 친구라도 석 달 내내 함께 지내고 나면 도망가고 싶어질 것만 같으니까. 게다가 비는 친한 친구도 아니다. 


늘 – 꽤 오래된 패턴인데 – 저녁 늦게까지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새벽 즈음에 잠드는 편이었다.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음악을 들으며 낙서를 하기도 하고, 서랍 속 물건을 들어내고 다시 차곡차곡 쌓기도 했다. 잠이 와도 끝까지 안간힘을 쓰며 뭔가를 하려 했다. 자려고 누워서도 잠드는 순간까지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러다가 아이패드를 얼굴에 떨어뜨린 적도 꽤 많았다. 물론 끔찍하게 아픔.

Image by 愚木混株 Cdd20 from Pixabay

그런데, 한 이주일 전부터 씻고 나면 그냥 침대로 들어가 버리고 있다. 하루종일 프로젝트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저녁이 되면 말도 뭣도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밤 열한 시에도, 열 시에도, 심지어는 여덟 시라도 씻기만 하면 침실에 들어갔다. 잠이 오던 안 오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있었다. 처음에는 잠이 들어도 새벽 한두 시쯤 깼다. 그래도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깨면 한두 시간은 잠이 안 올 때도 있는데, 그래도 계속 누워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런 패턴이 익숙해졌다. 일단 누우면 행복했다. 

더 이상의 지식은 포기하겠어. 대신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조합하면 되지. 나만 읽는 글을 계속 쓸 필요가 있나? 그동안 누워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게 낫지

논리적 분석, 합리적 결론. 하지만 또 너무 밤을 비생산적으로 보내다 보니 살짝 고민이 되던 즈음, 어떤 의사의 유튜브 클립을 만나게 되었다. 

‘잠을 많이 자야 몸의 균형이 잡혀요. 체지방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숙면입니다.’

몰랐다. 

‘게다가 부족한 수면은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이 되거든요.’

일찍 자는 게 익숙해진 김에 계속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났다. 늘 그랬듯이 한 서너 시간 동안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했다. 건설적이거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는 재미가 없으니까. 이렇게 쓸데없으면서도 새로운 헛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임이라니… 쓰잘데 없지만, 소중하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한 친구가 은행의 퀀트를 하는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주식 뭐 사면 돼?’

나도 궁금했다. 한 일 년쯤 전에 함께 일하는 친구가 금융 쪽 일을 하고 있으면서 아직도 주식 계좌가 없냐는 핀잔과 함께 직접 주식앱을 설치해 줬고, 나는 그날 난생처음으로 주식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그 종목은 미친 듯이 떨어져서 지금은 -60%의 수익률을 달성 중이다. 주식을 꽤 오래 한 어떤 친구는 아무리 장이 안 좋아도 그 정도로 떨어지는 건 흔치 않다고 했다. ‘풋 옵션을 살걸’ 했더니, 어설프게 들은 걸 다 입 밖으로 뱉어낼 필요는 없다고 했었지. 

‘나도 좀 알고 싶은데?’

.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나처럼 꽤 많은 손해를 봤더랬다. 그는 파생상품을 만드는 것과 주식은 상관이 없다고 피 튀기며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귓등으로 흘렸고, 그 친구가 능력 없다고 단정 지었다. 재미없는 이야기를 왜 그렇게 길게 하는 건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Posts created 495

Related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egin typing your search term above and press enter to search. Press ESC to cancel.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