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fi

아침에 열어둔 창으로 밀려들어오는 찬 바람에 잠에서 깼다. 창을 닫으려고 일어서는데 방안에 선선한 공기가 가득했다. 나는 창을 닫는 대신 플리스 재킷을 꺼내 입고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 소파에 앉았다. 몸이 찬 공기에 순간적으로 – 음펨바 효과(1)를 증명이라도 하듯 – 기분 좋게 식어버린다. 이런때는 lo-fi 음악이제격이다.

Nujabes – Aruarian Dance

Hi-Fi에 반대되는 용어인 lofi(Low fidelity)는 말 그대로 열화 된 저음질의 음원을 뜻한다. 사실 요즘은 일부러 만들기도 어려운 게 저품질 음원인데, 대부분 디지털 작업을 거쳐 바로 최종 산출물을 뽑아내기 때문이다.

특히 힙합 같은 경우에는 일렉 드럼을 직접 찍거나 비트를 뱅크에서 가져와 얹고, 그 위에 다른 디지털 믹스를 얹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 아날로그 녹음 때 들어가는 히스나 잡음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악기를 사용한다 해도 대부분 디지털 악기를 사용한다. 그런 이유로, 뮤지션들은 의도적으로 화이트 노이즈나 LP 위로 바늘이 지나가는 소리 등을 멜로디와 함께 믹스해서 의도적인 Lo-fi 효과를 만들어낸다.

Lo-fi 힙합은 중독성 있는 단순한 킥 드럼 비트에 짧은 멜로디 라인을 반복하는 일종의 BGM에 가까운 구성을 보여주는데, 이런 음악의 시작은 일본의 버블시대 시부야 주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힙합 비트에 멜로디를 얹으며 시작된 이러한 시도는 Mellow라는 키워드 아래 Funk, Jazz, Rock과 결합되어 퓨전 형태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고, 시티 팝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 언더그라운드에서 이긴 하지만 –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 힙합을 기반으로 활동한 누자베스 Nujabes(자신의 본명인 세바 준을 거꾸로 쓴 이름)라는 힙합 DJ 프로듀서가 있었는데, 힙합 비트에 감성적인 재즈 멜로디를 접목하여 큰 인기를 얻었었다. 그는 사무라이 참프루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OST 작업에도 참여했었는데, 이것이 크게 호평을 받으며 언더그라운드에서 더 많이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OST이다 보니 곡들이 대부분 배경음악 같은 편안한 느낌의 곡들이 많고, 그것이 Lo-fi 힙합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어버렸다.

lo-fi Hiphop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 특히 공부하는 듯한 모습의 캐릭터 – 함께 떠오를 텐데, 이 장르의 음악을 소개하는 DJ들이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할 때 앨범 재킷이나 영상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lo-fi Hiphop 클리셰로 자리 잡고 있는데, 아마도 그 시작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누자베스의 감각적인 Lo-fi Hiphop 곡들이 사무라이 참프루 같은 애니메이션의 OST로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OST의 특성상 보컬이 앞에 나서지 않는 BGM 같은 음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서 가볍게 듣기에 최적이긴 하다. 

유튜브나 Spotify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한 Lo-fi Hiphop DJ인 ChilledCow의 실시간 힙합 라디오의 이름도 ‘lofi hip hop radio – beats to relax/study to’로, 역시 음악의 특징을 설명하는 타이틀에 공부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물론 나는 공부할 때보다는 멍 때릴 때 더 많이 듣는 것 같긴 하지만…

(1) 음펨바 효과: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어는 현상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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