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갑자기 몰려 아침부터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메시지 수신음이 울린다. 요즘은 의사소통에 메신저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SMS가 오면 광고나 카드 혹은 쇼핑몰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무시해 버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은 알림 창에 살짝 보이는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Web발신] [CJ대한통운]주문하신물품 미배달사유:도로명불일치.수정하세
https://hoy.kr/……..
최근에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구매를 많이 해서 그런지 반송된 물건이 뭔지 한 번에 딱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도로명 불일치’라니? 물건을 주문할 때 배송지를 다른 장소로 지정했던 적은 가끔 있었지만, 적어도 주소를 잘못 입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생각보다 꼼꼼한 성격이기 때문에 주소를 적을 때도 꼭 서너 번은 다시 확인하고, 이미 외우고 있는 정보라도 늘 메모장에 저장해 둔 내용을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메시지를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도로명 불일치’
보통 인터넷상에서 주소 필드를 채울 때에는 도로명을 검색하여 선택한 후, 추가로 번지나 (아파트라면) 동/호를 직접 입력하게 된다.
메시지는 도로명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주소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왔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보통 도로명은 직접 입력하지 않는다. 쇼핑몰의 서버 쪽에서 불러온 리스트에서 거주지와 일치하는 도로명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직접 입력하지 않으니, 잘못 입력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쇼핑몰에 잘못된 도로명이 들어가 있고, 내가 그 잘못된 도로명을 선택해야지만 ‘도로명 불일치’라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있나?
택배 기사의 입장에서 보면 라벨에 인쇄된 주소 중 도로명 부분이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데,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도로명 불일치’라는 설명은 애매하기 짝이 없다. 불일치라는 건 두 개를 비교했을 때 같지 않고 어떤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배송하는 일은 주소를 비교하는 일은 아니니까. 즉, 배달해야 할 물건의 배송지가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가 핵심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직관적으로 가능한 오류 메시지는 ‘도로명 불일치’보다는 ‘주소지 불명’ 혹은 ‘존재하지 않는 배송지/주소’ 정도가 되어야 한다. 어쨌든 ‘도로명’에 대한 오류로 배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변경했던 국가사업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실 도로명 주소는 세계 대다수의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주소체계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도로 이름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나름대로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사실 바둑판처럼 큰길을 만들어두고 건물을 배치한 계획도시에는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동경이나 유럽, 서울처럼 오래된 도시는 길도 꼬불꼬불하고 경계가 모호해서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다.
도로명 주소 작업을 하려면 우선 도로명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에 이름 없이 정겹게 존재했던 골목길들에 하나하나 다 이름을 붙여야 했다. 물론 도로명을 정하고 건물에 번호를 부여하기 위해 일반화된 로직을 만들고 적용하긴 했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야 그게 뭐 중요한가? 문제는 이전에는 그냥 골목길이라고 불렀던 길들을 ‘성수이로 20길’ 같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기억해내지 못하면 앞으로 치킨을 배달받을 수 없다.’ 같은 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도로명주소법에 의거 2014년 1월 1일부터는 토지대장을 제외한 모든 곳에 도로명주소만 사용하게 되어있지만 쇼핑몰 주소 입력창에는 지번 찾기 기능이 여전히 존재한다. 세상에는 반복된 경험으로 당연해져 버린 것들 – 마치 핼러윈의 분장이나 추수감사절의 칠면조처럼 – 이 꽤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지번이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어쨌든, 도로명 주소는 지금 상황에서 크게 중요한 이슈는 아닐 것이다. 먼저 어떤 물건이 반송된 것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까? 메시지 밑에 하이퍼 링크가 붙어있으니 터치만 하면 어떤 물건이 어디쯤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바로 링크를 터치했다. 그런데, 연결된 브라우저에는 택배회사의 홈페이지만 덜렁 보이고, 다른 어떤 세부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실마리는 하나. 저 메시지가 발송된 전화번호의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볼 수 있다. 시스템에 의한 자동 발송일 수도 있지만, 택배를 하는 당사자의 전화번호일 수도 있다. 너무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 되어버린 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링크를 타고 가봤는데 송장번호조차 없어서 검색을 할 수가 없어요. 혹시 송장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공손하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음.
‘혹시 물건을 발송한 쇼핑몰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간결한 물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답변.
역시 자동 발송된 메시지였나? 하지만 가끔 택배 기사분께 물건을 경비실에 맡겨 두었다던지, 녹기 전에 빨리 가져가시라던지(아이스크림을 구매했었음) 하는 친절한 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 일도 못하고 자리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띠링~
하고 도착한 메시지.
‘저는 핸드폰 번호 도용 스미싱 피해자입니다. 문자 사이트 접속하지 마시고 핸드폰 소액 결제 차단하세요. 그리고, 자꾸 이쪽으로 메시지 보내지 말아 주세요.’
…
..
앗! 문자 사이트를 이미 접속했는데 어쩌죠?
하고 나도 모르게 메시지를 보내버렸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