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크라이시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친구에게 지금 그곳의 상황을 듣게 되었다. 생활할 때는 전쟁이었지만 떠나온 지 만 육 년 차가 된 지금은 좋은 기억만 가득한 그곳. 하지만, 현재의 실상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는 팬데믹 이후 원격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자 인텔리들은 샌프란시스코를 떠났고, 황량해진 거리에는 노숙자들만이 넘쳐난고 했다. 고객 감소와 빈번한 경범죄로 홀푸드마켓, 노드스트롬 백화점 같은 대형매장들도 하나 둘 철수를 했고 거리는 마약에 찌든 노숙자와 쓰레기만 가득하게 된 것이다. 지난 몇 년 간 인구가 30% 감소했다고 하니 샌프란시스코의 몰락이 마켓 스트리트 근처의 상황만 고려한 근거 없는 낭설만은 아니라는 게 확실하다. 마치 그 부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았던 디트로이트의 몰락처럼 말이다. 

내 기억 속의 샌프란시스코는 엄청나게 화려한 도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피셔맨스 와프부터 연결된 마켓 스트리트에는 늘 사람들이 넘쳐났고, 유니온 스퀘어나 피어는 항상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파웰스트리트를 지나갈 때마다 케이블카 탑승지에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의 관광객들이 겹겹이 늘어서 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대부분 다음날까지 읽어야 했던 엄청난 리딩에 우울해하며 길을 걸었다. 

낡은 케이블카를 타는 게 저렇게 좋을 일이야?

하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었고 그곳을 떠나올 때까지 나는 그 케이블카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나중에 관광객으로 다시 찾아왔을 때, 케이블카를 타는 일이 오롯이 그날 일정의 하나일 때, 그때 타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서너 번 다시 방문했었지만, 일로 가서 그런지 케이블카가 일정의 하나였던 날은 없었다. 다시 여행으로 그곳을 가게 된다 해도 이제는 그때만큼의 관광객이 줄을 서있지는 않아 김이 새겠지? 케이블카 탑승의 기대감만큼이나 같은 목적으로 두근두근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게 즐거운 것일 테니 말이다. 


팬데믹의 도래로 정착되어 버린 재택근무는 사업 운영의 패턴을 크게 바꿔버렸고, 그로 인해 지역별 유동인구도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바람에 네이버 후드의 비즈니스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국내는 이제 다시 팬데믹 이전처럼 회사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복귀했지만, 미국의 경우는 아직도 50% 이상이 재택근무를 수행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오피스 렌트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기업에서도 팬데믹 이후 아예 렌트 스콥을 줄여버리고 재택을 권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재택업무가 효율적으로 잘 운영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런 노하우가 쉽게 쌓여 적용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 이유로 요즘 다시 기업들이 사무실을 꾸며놓고 점심식사를 뷔페로 제공하는 등 다시 출근을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좀처럼 직원들은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다. 한번 바뀐 패턴을 다시 변화시키는 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호주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재택의 비율이 아직도 높다. 그곳에서 사는 여동생은 요즘도 거의 회사를 안 가고 있는데, 운전하기도 귀찮고 출근했다가 다시 퇴근하는 패턴 자체가 비효율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그걸 이제야 깨달은 것도 놀랍지만, 가기 싫으면 안 갈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내가 보기엔 일을 아주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음.

재택과 출근 중 무엇을 선호하냐고 물어본다면 답변이 쉽지 않은데, 회사를 출퇴근하며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는 건 별로지만, 친한 사람들과 소소하게 얼굴을 대하는 건 즐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친한 사람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내겐 소중한 사람들인데 일터에 오면 그들이 주변에 있다. 물론 일터에서도 티 나게 사람들과 살갑게 지내는 건 아니다. 인사도 잘 안 한다. 아는 척하는 게 조금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냥 주변에 친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뿌듯하달까? 왠지 조금 이상한 사람 같지만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샜지만 팬데믹, 재택, 그에 따른 도시 침체를 이겨내고 샌프란시스코가 다시 이전처럼 생기를 되찾게 되길 바란다. 옛 애인이 힘들게 사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살고 있길 바라게 되는 마음처럼 말이다. 아니라고요? 너 나쁜 아이로구나.(죄송)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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