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는 잔을 내려놓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도어록을 사용하는 방법이 대체 언제부터 암묵지暗默知 화 된 거냐고!’
난데없이 대체 무슨 소리지?
‘도어록 숫자패드에는 영(0)의 좌우로 별표(*)와 파운드(#)가 붙어 있거든. 아니 그 이전에 숫자패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게 좋겠어. 숫자패드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 알고 있니?’
숫자패드는 물론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에 여러 종류가 있었나?
‘하나는 전화기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위에서부터 오름차순으로 숫자가 배열되어 있어. [123, 456, 789, 0]의 순으로 말이야. 다른 하나는 계산기에서 사용되는 방식으로 전화기 키패드와는 반대로 좌상부터 [789, 456, 123, 0] 순으로 숫자가 나열되어 있지.’
듣고 보니 전화기의 숫자배치와 키보드의 숫자패드는 분명히 친구가 이야기한 대로 서로 다른 배치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둘이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친구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계산기에서 사용되는 숫자패드는 1914년 스웨덴 태생의 미국인인 David Sundstrand에 의해 처음 특허출원됐어.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배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배치가 효율적이라는 근거는 – 누르기 쉬운 아래쪽에 자주 사용하는 0이 배치되어 있는 것 말고는 – 어디에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게 재밌는 포인트지.’
그 정도 재미있는 건 어디에나 있다. 어쨌든 그렇다면 전화기용 숫자패드는 그 이후에 소개되었다는 이야기.
‘맞아. 1950년대에 전화 걸기가 상당수의 지역사회로 확대가 되면서 전화번호의 길이가 길어지고, 이에 잘못 걸려온 전화가 급속도로 늘어났다고 해. AT&T 엔지니어들은 이것이 비효율적인 키패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연구된 여러 키패드 프로토타입 중 하나가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숫자패드인 거야.’
그것과 별표(*) 키 및 파운드(#) 키는 무슨 관계일까.
‘AT&T에서 새로운 키패드를 소개할 때 두 개의 버튼을 추가했어. 아까 이야기했던 별표(*)와 파운드(#)가 그것들이지. 이런 키가 포함된 정확한 이유는 초기문서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아. 하지만 향후 기능 및 서비스에 유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추가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게 돼.’
대체 그런 의심을 왜 하는 거지? 전화 키패드를 만든 사람이 특수 키를 눌러 사람을 살해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별표(*)는 처음에 전화 시스템에서 특수서비스나 기능에 접근할 때 사용했어. 음성 메일에 접근한다거나, 메뉴를 탐색할 때처럼 말이야. 파운드(#)는 핀번호 또는 음성 사서함 비밀번호의 입력종료를 알리는 데 사용했지.’
이 즈음에서 나는 도대체 왜 짜증이 났던 건지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최초에는 파운드(#)를 비밀번호의 입력종료를 알리는 데 사용했던 말이지. 그런데, 왜 화장실 도어록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를 눌러야 하냐는 거야? 게다가 저기 포스 옆을 봐. 화장실의 비밀번호만 쓰여있잖아.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무엇을 눌러야 문이 열리는지까지 적어두지 않았다고.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별표를 누르는 게 일반적인 통념通念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야. 파운드를 눌러야 열리는 게 기원적으로 봤을 때 더 당연하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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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를 누르는 걸 화장실 변기에 접근하기 위한 액션이라고 목표지향적 관점으로 해석하는게 더 직관적이지 않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재미없는 이야기가 길어질까 봐 꾹 참았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