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20세기 후반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리얼리즘의 대가 레이먼트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감상입니다. 이 단편집에는 그의 중기 단편 열일곱 편이 담겨있는데, 모두 미국의 근로자층 혹은 중류층의 삶을 섬세하고 농밀하게 담아내고 있어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의 테크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작가는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입체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글로 풀어나갈 때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선형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장면은 고정시킨 후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듯 묘사하고, 이야기는 혼잣말 혹은 둘의 대화로 진행시키는 방법이 그런 것들이죠. 하지만 그는 다릅니다. 그의 소설 속 장면은 계속 움직이고 전환되며, 세명 혹은 네 명의 대화도 등장해요. 대화도 메인 스트림이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중간에 누군가가 화제를 전환시키고, 다시 또 다른 화제로 전환되었다가,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가 얼굴을 쓰다듬기도 합니다. 레이먼드는 현실에서 있음 직한 모든 일들을 입체적으로 구상해 내고 – 마치 영화의 신을 구성하듯 – 그것을 2차원적인 문장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내요. 부러워라. 

일반적인 소설에서 세명 이상이 대화하는 모습을 만나보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을 문장으로 구성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선형적으로 구성하는 글이 많은 이유도 단순하죠. 그 방법이 글을 쓰기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와닿지 않는 사람도 꽤 많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복잡다단한 상황을 계속 머릿속에 그리며 글을 읽어나가야 하기 때문이죠. 네 명의 대화라면 지금 대사가 누구의 것인지 신경을 쓰면서 그 결과로 변화하는 네 명의 심리적 상태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메인 화제를 놓치지 않고 관리하면서 계속 점프하는 다른 화제들을 따라가야 하기도 해요. 자칫 잘못하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금방 길을 잃게 된다니까요. 어렵습니다. 

테크닉적으로는 완벽하지만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스토리는 어떨까요? 그것을 확인하려면 장편을 접해볼 필요가 있는데, 레이먼드는 남긴 장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에서 보여준 화려한 테크닉을 그대로 살리며 긴 숨의 글을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봐요. 그렇다고 자신의 스탠다드를 낮춰가며 장편을 쓴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을 테니 말이죠. 물론 감각적인 소재의 나열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단편과는 달리, 마라톤 급의 줄거리를 통한 일관적 메시지 구성이 필요한 장편이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그의 소설을 읽는 내내 상상을 더하지 않고도 영화를 감상하듯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일반 독자들에게야 호불호는 있겠지만, 직업 작가라면 그의 기술적 능력을 존경하거나 질투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쓸 수는 있지만, 제대로 받아들여줄 독자가 없잖아.’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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