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 2024-6-15

올해 첫 수박을 먹었다. 그해 첫 수박은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데 마지막 수박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작년 첫 수박은 언제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기억 안 남

잠실역 지하보도에 있는 어묵집은 사람이 엄청나게 붐빈다. 가판 앞에 사람이 차면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을 것만 같지만, 이 어묵집이 건재한 이유는 손님들이 나쁜 위치에서도 귀신같이 어묵을 집어드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춘서커스의 목이 길어서 슬픈 기린 인간의 목처럼 쭉쭉 늘어나는 그들의 팔. 

진심 놀라움

벌써 일주일이 넘게 충혈된 눈이 회복되질 않는다. 문득 평생 이렇게 짐승 같은 눈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자 겁이 덜컥 났다. 그나마 유일한 내 매력포인트는 깊이를 알 수 없이 그윽한 눈이었는데, 그게 지옥불 속처럼 보이고 있는 상황임.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유튜브도, 웹서핑도, 넷플릭스도, 게임도 모두 관심을 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랬더니

할 게 없음

그래서 오후 8시에 잤다.

아침에 보니 여전히 빨갛긴 하지만 왠지 그 붉은 실핏줄의 분포가 균일해진 느낌이다. 화산 속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피안개가 낀 것처럼 차분해진 상태. 그래서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한번 봐달라고 했다. 

‘어머 나아진 게 진짜 하나도 없네?’

혹시 내가 그대로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 걸까?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 먹은 친구도 한마디 거든다. 심지어는 물어보지도 않았음. 

‘눈이 왜 그래? 징그러워.’

내가 보기엔 조금 나아졌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나밖에 없었다. 

다들 은근히 무료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서 저녁에 다시 한번 모든 스크린을 멀리하는 밤을 맞이했다. 오늘은 책을 읽을 것이다. 어제는 왜 할 게 없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편인데 말이다. 심지어 어렸을 때는 밥도 안 먹고 독서만 했다고 한다. 약간 미쳤던 것 같음. 

어쨌든 책꽂이에서 읽을 책을 찾다가 갑자기 킨들(이북기기)이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다. 미국에 있을 때 킨들을 한 너 다섯 개 샀고, 돌아와서도 꽤 오래 가지고 다니는 바람에 가방이 한층 더 무거웠었다. 가끔 가방에서 꺼내면 방전이 되어있었지. 킨들은 e-ink 스크린이기 때문에 눈에 피로를 주지 않으니, 지금 같은 상황에 너무 적합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책상 속에 방전되어 있는 킨들 오아시스를 꺼내 충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잠들었음 

다음날도 역시 눈은 그대로였다. 같이 일하는 친구가 함께 걱정을 해주면서 ‘자연의 녹색을 좀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며 조언을 해준다. 맞는 말이다. 시멘트 빌딩 숲에 매몰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이 나의 눈을 이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옛날에 아빠도 그런 이야기를 해줬다.

‘공부하다가 눈이 피로하면 자연을 좀 봐’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아서 자연을 보지 않았음. 어쨌든 그녀의 조언을 받아들여 자연의 녹색을 한참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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