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와 작가의 기본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201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그의 최초 장편이었던 ‘노르웨이의 숲’과 궤를 같이 하는 일상 연애 소설입니다. 아니 일상 연애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상 소설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네요.

일부 사람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적 인기가 하강하게 되는 변곡점을 만들어낸 작품이라 이야기하기도 하고, 무라카미식의 연애와 인연에 대한 반복이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 이해가 가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과 함께 꽤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 봐야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구성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죠. 공상과학, 공포 혹은 오컬트가 아닌 평범한 동시대 배경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독자들이 그것에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유로 동시대를 그리는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소재나 스토리가 독특합니다. 대부분 출생의 비밀, 소시오패스, 이상성욕자, 야망 등의 특별한 소재를 현실 속에서 스큐어모피즘적으로 구성하는 이유가 있다는 거죠.

일상적이고 현실에 있을 법한 소재로 써 내려간 소설이 심심하다면 이유는 하나입니다. 글을 맛깔나게 잘 못쓰기 때문이에요.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또 그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니까. 특히 요즘처럼 누구나 인터넷에 쪽글을 올려 쉽게 데뷔 비슷한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죠.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문화창작 관점에서의 아웃라이어들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소재나 스토리의 독창성 쪽에 더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미술과 음악 쪽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이들은 기교보다는 창의성이나 우연성에 집중합니다. 반면에 고전적 방법으로 시간을 들여 켜켜이 노력을 쌓아온 예술가들은 기초가 튼튼하죠. 그들은 그 기본 위에 창의성이나 우연성을 덧대어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그 기본기를 인지 혹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예술의 딜레마예요. 다시 이야기하자면 대중의 대부분은 작가의 기본과 기초의 결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 기본 기술은 테크니컬 하게 감각적 산출물로 승화되어 대중에게 전달될 필요가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네요.


하루키의 대중적 인기는 ‘모던한 라이프스타일의 드라이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쿨하고 독창적인 스토리’(요즘 작품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기는 조금 힘들지만) 정도의 설명으로 대변됩니다. 물론 맞는 말이죠. 하지만 저는 그 아래 감각적 산출물로 승화된, 그의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그 인기의 굳건한 기초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문장을 만드는 능력은 탁월해요. 책 한 권에 등장하는 수천 개의 문장 하나하나가 완전하며 또한 맛깔납니다. 모든 문장들은 주변의 문장들과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로 상호작용해요. 그런 이유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이어지는 읽기의 흐름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 자연스러움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엄청나기 때문이에요. 그의 문장은 특정 상황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임과 동시에 완전성을 갖춘 독립적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장의 구조적 완성도는 전체 소설의 구조를 탄탄하고 건실하게 만들어주죠. 그 위에 그만의 독창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해 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도 마찬가지예요. 그리 특별한 소재나 사건도, 아주 예측 불가능한 전개도 아니었는데 책을 중간에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건 발간 즈음 처음 읽을 때도 그랬고, 얼마 전 다시 두 번째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물론 두 번째 읽기 시작할 땐 줄거리를 다 잊어버렸었음)

개인적으로 끌리지 않는 책은 가차 없이 내려놓는 성격으로, 거의 중도하차 마니아 수준이거든요. 가끔은 책을 중간에 내려놓기 위해 독서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라니까요? 측정 바늘이 우측 끝까지 밀리는 천상 ‘T’로 ’ 읽다 보면 뭔가 장점이 있겠지 ‘하는 따뜻한 생각은 해본 적도 없고요.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는 제게 좀 특별한 작가입니다.

혹시 이 포스트를 보고 난 후 그의 책을 접하게 되는 분들이 그 충실한 기본기를 인지하며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게 된다면 조금 기쁠 것 같네요. 그의 문장 구성 능력은 이론과 교육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감각과 노력을 통해 스스로 일구어낸 것이기 때문에 그냥 놓쳐버리는 게 아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인터넷상에 여러 추천이 있긴 하지만, 하루키에 익숙하지 않은 독서가들에게 그의 작품을 추천하라면 개인적으로 장편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단편집은 <여자 없는 남자들>, 에세이는 <해 뜨는 나라의 공장>를 권해보고 싶네요. 제 취향이 대체 어떤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참고만 하시길.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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