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뒤척거리다가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밤이 되면 도시로 밀려들어오는 안개 덕에 집 앞 거리도 그 시간대는 늘 낯설고, 허술한 창틈으로 찬 바람이 스멀스멀 밀려 들어오는 샌프란시스코의 스튜디오도 도무지 익숙해질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의 낮이 노르웨이 신화 속의 화창한 신들의 도시 아스가르드라면, 밤은 어둡고 음울하며 흐린 날씨에 안개가 가득한 고담 같다고나 할까? 확실한 건 이곳의 밤은 밝고 화창한 낮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는 거다.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생활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편하게 푹 자본 적이 거의 없다는 거. 음침해. 기분 나빠.
그런 이유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길을 걷고 있는데, 바트(지하철) 역 앞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상하긴 한데, 대체 뭐가 이상한 건지 잘 모르겠어서 앞에서 한참을 봤다.
아니 왜 에스컬레이터는 내려가고, 올라오는 사람들은 계단을 사용하지?
조금은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는 게 바로 샌프란시스코다. 가뜩이나 오늘 하루 종일 초겨울 저녁처럼 어둑어둑하고 추워서 우울한데, 에스컬레이터 시스템의 조작 메커니즘 당위성까지 고민해야 하는 건가? 제발 어제 몽고메리역의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던 수리공이 작업 후 깜빡 상하 조작 버튼을 잘못 돌려놓고 갔기를 빈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또, 올라오는 사람들도 모두 평화스러워만 보이는 건 또 뭐야? 만사가 귀찮긴 하지만, 이런 건 좀 궁금하잖아. 그래서 같이 걷던 이곳 토박이 친구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시민들의 건강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그래서 시의회에서는 도시 및 공공서비스 운영정책 중 하나로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는 데 사용하게 했어. 내려가다가 넘어지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게 아주 좋은 운동이 되기도 하니까.”
듣고 보니 정말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서울시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걸까? 시민들이 건강하지 않고 골골대야 자신들의 말을 잘 들을 거라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건 전 세계적으로 우측통행처럼 잘 전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비슷한 시간대에 다시 몽고메리역 앞을 지나가는데, 이게 뭐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잖아?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미국 놈들 때문에 정말 미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