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자친구

그녀는 저녁을 먹는 내내 억울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다. 누구든 언제나 무언가에 억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롯이 그녀의 것이니 스스로 극복할 수 있기를 속으로 응원해 주면 된다. 그렇게 안주를 묵묵히 먹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눈치 없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묻는다. 왜 저래? 하지만 그녀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오랜만에 주말에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맛집을 찾아갔다고 한다. 긴 웨이팅 끝에 겨우 자리에 앉았고 친구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사람이 걸어오는 거야

몇 년 전 그녀가 사귀다가 헤어졌던 남자친구. 그 옆에는 새로운 여자친구도 함께였다. 그녀는 당황했다고 한다. 친한 친구와 식사만 하자고 만난 상태라 차림새가 후줄근했기 때문이다. 마침 친구도 화장실에 가서 마치 외톨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최악이었다. 심지어 그와는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다. 아니 다시 만나면 욕이라도 쏘아붙여주고 싶을 정도였다. 심지어 이런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준비했던 대사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태라니!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졌고, 마치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는 그녀를 보았지만 안 본 것처럼 지나치고 있었다. 그녀는 외치고 싶었다.많은 친구들의 식사 요청 중 하나를 힘들게 선택해 나온 상황이라고, 그리고 그 애는 지금 막 화장실에 갔다고, 머리도 그때보다 꽤 길러서 에어랩으로 세팅하면 라푼젤처럼 예쁘고, 멋지게 차려입으면 지금보다 두세 배는 근사하다고 말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음. 어쨌든 그녀는 욕보다 그런 상황설명이 더 시급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가 영겁 같던 시간 속에 굳어있는 동안, 그는 식당을 한 바퀴 돌고는 여자친구와 함께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녀는 자괴감에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고, 이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친구가 한없이 미웠다. 친구가 옆에만 있었어도 그렇게 막대기처럼 앉아서 사마귀처럼 불쌍한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배가 아프면 약 먹고 집에서 쉴 것이지 왜 간다고 해서 이런 사달이 나게 한 걸까? 물론 저녁을 먹자고 한건 그녀이긴 했지만 말이다. 적어도 메뉴는 시키고 화장실에 갔어야 했다. 물론 먹고 싶은 메뉴는 이미 다 정해두었다고 한 것도 그녀이긴 했다. 어쨌든 얄미웠다.

그런 복잡한 상황인 줄도 모르고 그녀의 친구는 그녀에게 무엇을 시켰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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