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빼야 할 것 같아요.’
의사가 말했다. 어금니가 너무 아파서 치과에 치료하러 왔는데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상태가 안 좋은가요?’
‘네, 이 엑스레이 사진을 보세요. 일 년 전에 찍었던 사진과 같이 볼게요. 이렇게 뒤쪽 뼈가 많이 녹아있죠?’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 거예요. 이쪽도 보세요. 이빨 안쪽에도 녹아있는 게 보이죠?’
‘약간 검게 보이는 게 녹은 건가요?’
‘맞아요. 앞뒤로 많이 부어 있기도 해서 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하루 걸러 이빨을 뺀 적도 있었다. 그때는 흔들흔들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훅 빠져버리기도 했으니까.
‘어렸을 때 처음 생기는 이를 유치乳齒라고 해요. 유치는 위턱에 10개, 아래턱에 10개씩 맹출萌出 하게 됩니다.’
‘맹출이요?’
‘이는 뼈예요. 이도 처음에는 다른 뼈들처럼 피부 안에서 자라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 꽃이 피듯이 – 잇몸을 열고 피부 바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현상을 맹출이라고 해요. 피부과 의사에게 물으면 작은 종기가 광범위하게 돋는 것이라고 할 테지만.’
‘아, 네. 둘 다 맹출인가 보네요.’
이렇게 영구치永久齒인 어금니를 빼야 할 상황이 되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이를 관리하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됐다. 잘 관리해서 유치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지금 어금니를 빼도 다시 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아요. 유치는 어렸을 때 빠지게 되어 있는 거예요. 단단하지도 않고, 썩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영구치가 맹출 되면서 유치의 뿌리를 녹이거든요. 그래서 쉽게 흔들려 빠지게 되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예요? 그렇다면, 관리할 필요가 없었던 거네요.’
‘영구치가 난 이후로 잘 관리하셨으면 오늘 이를 뽑지 않으셔도 되는 거죠.’
왜 사람은 이가 한 번만 더 나는 걸까? 서너 번쯤 더 났다면 이를 뽑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상어로 태어나셨다면 이가 계속 나셨을 거예요.’
‘그래요?’
‘상어에게는 이빨 재생 유전자 네트워크가 존재해요. 그래서, 이가 죽을 때까지 계속 나거든요.’
하지만, 이빨 때문에 상어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
‘영국 셰필드대의 동식물학과 연구진이 인간에게도 상어와 똑같은 이빨 재생 유전자가 있다는 걸 밝혀냈어요. 치아판齒牙板이라는 상피성 세포가 이를 계속 나게 해 주는데, 인간은 이 세포가 이를 한번 갈고 나면 사라지거든요. 그런데, 동일 유전자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에, 이 세포를 지속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답니다. 곧 인간도 여러 번 이를 갈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저도 이빨이 새로 날 수 있겠네요?’
‘우리 때는 아니에요.’
의사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임플란트를 하는 방법밖에 없겠지?
‘아니에요. 방법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네? 틀니요?’
‘어금니는 힘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어금니 하나만 틀니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뭐가 있죠?’
‘잘 아시는 임플란트 외에 [이플랜트 齒-plant]가 있어요.’
‘이플랜트요?’
‘네, 이플랜트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고 해도 나는 임플란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플랜트는 뭐지?
‘이플랜트는 말 그대로 이빨을 심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임플란트도 가짜 이빨을 심는 것 아닌가요?’
‘이플랜트는 실제로 진짜 ‘이빨의 씨앗’을 심습니다. 마치 꽃씨를 심듯 말이에요.’
정말 세상에 그런 게 있었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이플랜트는 사실 모든 치과에서 시술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즉, 극히 일부의 치과의사만 이플랜트를 시술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기술이 있다면, 왜 모든 치과의사가 시술하지 않는 거죠?’
‘하나의 자격증이 더 필요해요.’
‘의사 자격증 말고요?’
‘네, 원예 기능사 자격증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이 시술될 수가 없죠. 물론 그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지? 치과의사가 원예 기능사 자격증도 있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이플랜트는 실제로 이를 심는 작업을 하는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시술하게 될 때 잇몸을 가르고 그 안에 [이빨 씨앗] –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어금니 씨앗] – 을 심게 됩니다. 그리고, 잇몸을 덮죠. 환자분은 그 이후 한 달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매일 치과를 방문하셔야 해요.’
‘매일 방문해야 한다고요?’
‘네, 그러면 – 원예 기능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 제가 날마다 그 자리에 물을 주고, 일정 시간 동안 직사광선을 쬐어드립니다. 저기 수술용 조명 보이시죠? 저걸 사용해요.’
‘화초를 키우듯이요?’
‘그렇죠. 그래서 원예 기능사 자격증이 필요한 거예요. 기술이 없으면 이빨 씨앗을 틔우지 못하거나, 틔워도 바로 말려 죽여 버리거든요.’
‘싹이 튼다고요?’
말도 안돼.
‘네, 점점 자라요. 자라면서 뿌리 쪽이 점점 두터워지고 하얀 열매가 자랍니다. 꽃이 한번 피고 지면 줄기는 시들고, 흰 열매는 계속 자라서 치조골에 단단히 고정된 채 잇몸 위로 뚫고 올라옵니다. 그게 바로 이빨이 되는 거죠.’
‘뭔가를 계속 먹을 텐데, 입 안에서 잘 자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자라는 동안 음식물이나 다른 이빨에 이빨 싹이 상하지 않도록 그 위에 테프론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비커 형태의 뚜껑을 덮어둬요.’
‘뚜껑이면 금방 떨어져 나갈 텐데요?’
‘그러면 안되죠. 이빨 싹이 상하게 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니까요.’
‘테이블 위에 컵을 엎어두는 것도 아니고, 잇몸 위인데 어떻게 안 움직여요?’
‘다 방법이 있죠?’
‘어떻게요?’
‘그 테프론 비커에는 나사가 붙어있어요. 그걸 치조골 – 이가 박혀있던 뼈를 말합니다 -에 구멍을 뚫어 그 테프론 비커를 고정시키면 돼요. 그러면, 절대 움직이지 않죠.’
‘아. 그러면 절대 움직이지 않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게 임플란트 방식 아닌가요?’
‘네 맞아요. 제가 아까 이플란트를 많이 시술하지 않게 된 이유가 자격증 말고도 하나 더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러셨나요?’
‘네, 그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어차피 이플랜트도 비커를 고정시키기 위해 치조골에 구멍을 뚫거든요. 그냥 거기에 인공치근을 대신 심으면 바로 상황 종료니까.’
‘원예 기능사 자격증도 필요 없고요.’
‘바로 그거예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플랜트라는 기술이 별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의사는 왜 원예 기능사 자격증을 딴껄까?
‘저는 그냥 원예에 관심이 많아서 딴 거예요.’
그랬구나.
‘그러면, 임플란트로 부탁드려요’
‘네 알겠습니다. 세 달쯤 후에 다시 오세요. 치조골이 조금 채워지면 그때 상태를 보고 시술하죠.’
‘네, 그때 그 테프론 비커도 좀 보여주세요. 구경 좀 하게요.’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