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평화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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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는 한 변호사가 테니스를 치다가 코로나에 걸리게 된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방송을 틀어두고 코로나 상황 브리핑 멘트를 리뷰하던 질본의 정수형 본부장은 그것을 보고는 다급히 현재 기업과 코로나 면역과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던 면역 관리부의 김현성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뉴스 봤어? 그 가설은 말도 안 된다고 했었잖아!

그 가설은 식사 중에 나왔다고 했다. 법무법인 OO에 지인이 있는 면역 관리부의 한 연구원이 점심 식사 중에 쌀국수를 흡입하며 별생각 없이 ‘법무법인 OO에는 아직 확진자가 한 명도 없대요. 거길 퇴사한 사람들 중에서도 없는 건 좀 신기하죠?’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발단이었다. 분명히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태리나 미국처럼 한 블록 건너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냥 웃어넘기는 게 맞았다. 그런데, 같이 식사를 하던 김현성 실장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아~’ 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내고는 바로 특정 기업과 해당 직원 코로나 면역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라고 지시를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었다. 지시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그걸 별 말없이 듣고 묵묵히 가설 검증 단계를 진행하고 있는 면역 관리부 사람들도 참 너무했다. 하지만, 다들 힘든 상황이니 다그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혼자 삭히다 보면 ‘금방 그만두겠지’ 했었다. 

직접 조를 짜서 법무법인 OO의 재직자와 퇴직자 그룹에서 표본을 추출하고 면역 검사를 위한 채혈을 해올 때는 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강하게 그만하라고 밀어붙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약간 켕기는 것이 있었다. 만에 하나, 혹시 관계가 있다면? 그런 작업을 방해했던 나는 인터넷 마녀사냥의 제물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관관계가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정말 십만의 하나라도 재수 없게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요즘처럼 온 국민이 코로나 피로감에 의한 분노조절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단체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그때 코로나로 아내를 잃은 판사라도 걸리면, 나는 사형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냥 놓아두다가 결과가 나오면 그때 쥐 잡듯이 다그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채혈까지 해 온 거야? 원심분리기에서 돌리고 있는 혈액 샘플들 모두 폐기해 버려!

‘…..’

전화기 너머 김현성 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듣고 있어?

다시 침묵. 

– 김현성 실장!

‘네,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진행하고 있던 기업과 임직원의 면역체계에 대한 상관관계 조사작업은 바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생각 좀 하면서 일하라고.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됐잖아.

‘본부장님.’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것에 긍정을 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려 하고 있다. 여기서 말리지 말고 계속 다그쳐야 한다.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그런데, 그 인터뷰 있잖아요. 그걸 보다 보니 코로나를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가 보여서요.’

– 응? 뭐라고? 그게 뭔데?

종식이라는 말이 이렇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나? 그 인터뷰를 나도 봤지만 별 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도대체 어디서 종식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거지? 나는 재빨리 인터뷰를 머릿속에서 복기하며 그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인터뷰를 보면 확진자가 테니스 공에 입을 맞추었다고 했었잖아요.’

– 응 그랬지. 

혹시 그걸 보고 코로나에게 Kiss and Say Good-bye 이런 생각을 한 거라면 바로 해고다. 

‘혹시 테니스 공의 속도를 아시나요?’

– 속도? 빠르지 않나?

‘네, 평균 250km 정도 돼요. 서브였으니 평균보다도 높은 속도였을 테고, 회전도 엄청났을 겁니다.’

– 그런데, 그게 왜?

현기증이 났다. 

‘그렇게 빠른 회전하는 공에 코로나 균이 붙어 무사히 상대까지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에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가설을 세워 보게 됐어요.’

또 가설이다. 

‘코로나 균은 손이 있을 것이다.’

– 응? 뭐라고?

‘그렇게 빠른 공에 붙어 있으려면 손으로 공 위의 털을 꽉 잡았을 테니 말이죠.’

-….

갑자기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우선 꾹 참았다. 그게 코로나 종식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까지는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 소… 손이 있다 쳐도 그게 코로나 종식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아, 네. 손이 있으면 악수를 할 수 있으니까요.’

무슨 개소리지?

‘손이 있으니까 다시는 인간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협의를 한 후 악수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평화협정이죠.’

– 아….

바로 심한 말을 퍼붓고 싶었지만, 순간 단련된 부동심으로 참아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손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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