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싸늘한 공기처럼, 불쑥 찾아오는 생(生)의 감각들

봄이겠지 하며 가볍게 입고 나왔다가 싸늘하게 와닿는 공기에 놀라 다시 집으로 들어가고 싶어 졌던 그런 날씨였다. 이런 날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제 랜덤 플레이에서 우연히 김동률의 ‘Reply’를 들었다. 김동률은 개인적인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찾아 듣는 음악가는 아니지만, 어제는 이곡에 사로잡혀 삼분 남짓동안 아무것도 못했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도 나는 싸늘한 날씨에 내던져질 때처럼, ‘내가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을 번뜩했었다.

난 요즘 가끔 딴 세상에 있지
널 떠나보낸 그날 이후로 멍하니
마냥 널 생각했어
한참 그러다 보면
짧았던 우리 기억에
나의 바람들이 더해져
막 뒤엉켜지지
그 속에 나는 항상 어쩔 줄 몰랐지
눈앞에 네 모습이 겨워서 불안한
사랑을 말하면 흩어 없어질까
안달했던 내가 있지

이 가사 속의 주인공은 지금 태풍 안에 있다. 주변은 온통 균열이고 불편함으로 가득하다.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마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 안으로 내닫는 주인공의 외침을 들으며 나는 어떤 생각을 했던 걸까? 

갑자기 다른 사람들은 어떤 때 ‘내가 살아있구나’하는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나는 평온하고 안락한 상태일 때보다는 예상치 못한 균열을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을 한다. 생각을 했다기보다는, 그런 느낌 안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포커게임 후 딜러의 손길에 의해 순간적으로 밀려가는 포트처럼…

사실 살아있다는 감각은 거창한 성취보다는 불편함의 미학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살아간다는 건 불편함을 참아내는 것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평소와는 다른 균열의 인지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사람들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고, 그것은 상황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준다. 심연을 들여다보게 해 준다.

‘내가 살아 있구나.’
‘이 사람을 좋아하네.’
‘가슴 아파.’

그런 것 같죠? 아님 말고…

카페에 들어와서 어제를 복기해 보려고 ‘Reply’를 다시 들어봤지만, 오늘 이곡은 다시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옛날 곡일 뿐이다. ‘이상하네’하고 있는데, 이어 김동률의 ‘내 사람’이 플레이된다.

어우 목소리랑 이렇게 안 어울리는 곡을 왜 부른 거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Posts created 610

Related Pos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egin typing your search term above and press enter to search. Press ESC to cancel.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