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의 뒤에 서 있는 겨울
봄이 온 것은 확실한데 겨울은 이대로 발걸음을 돌리기 왠지 아쉬웠나 보다. 봄 햇살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어둑어둑해지면 거대한 힘으로 주변 공기의 온도를 내리누르고, 가끔은 밤 비라는 용병을 동원해 낮에 머금었던 대지의 온기를 한 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이런 시기에는 어떤 옷차림을 해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도 없고, 건물 안은 바깥보다도 더 싸늘해서 마치 관짝 안에 누워있는 것 같다. 그야말로 최악이다. 이런 때는 그냥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 게 마음 편한데, 그게 또 잘 안 되는 걸 어쩌나. 봄 옷은 정말 한철이니까. 하지만 올해도 한번 못 입고 또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봄에 점퍼를 입고 다닌다는 발상을 한 게 잘못이다. 나이 들면 현명해진다는 말을 대체 누가 한 거지? 이미 그 사람도 현명하지 않았다는 걸 우린 알아야 함.
달리는 곰
‘태도가 작품이 될 때’라는 박보나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사실 작가라기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그녀의 책을 집어 들게 된 건 그 책의 서문 때문이었다. 서문은 환경부에서 2002년 이래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을 발생하여 개체수를 늘리는 사업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때 방생된 곰 중 하나가 풀어놓은 지리산에서 80킬로나 떨어진 김천의 수도산으로 계속 도망을 간다고 했다. 환경부에서 이 곰을 다시 지리산으로 옮겨 놓아도 이 고집 센 곰은 포기하지 않고 매번 다시 또 수도산을 향해 달렸고, 버스에 치이는 사고까지 당했다. 그래서 결국 환경부는 그 KM-53(곰의 고유번호)을 수도산에 살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KM-53이 신중하게 고속도로를 건너고, 조용히 민가를 피해 자유롭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즐겁다. 멀고 위험한 여정에도, 그리고 잡히면 여지없이 마취총에 맞아 다시 제자리로 옮겨지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탈주를 시도하는 그의 의지가 근사하다. 방사된 나머지 반달가슴곰을 47마리처럼 지리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낯선 곳을 향해 혼자 다른 길을 달리는 그 녀석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탈것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다리만을 사용하여 수도산으로 내달리는 그 곰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즐거워졌다. 그 탈출이 성공했다는 것에 짜릿함을 느꼈다. 이렇게 신문 귀퉁이에나 올라올 만한 사건에 자신만의 시선을 가지고 진심을 담아 응원하는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천히 아껴가며 이 책을 읽고 있는 중.
이소라
그녀가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와우에만 집중했던 그녀가 시선을 우리에게 돌렸다. 그녀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정재형의 채널에서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음악가들 중 가장 이상적인 예술가인 그녀는, 여전히 섬세하고, 아이 같고, 진중했다. 와우에서도 힐러를 담당한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함박 미소를 지어버린 나.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클립을 다 본 후, 그녀의 비교적 최근 곡인 ‘바라 봄’과 추억의 ‘track 9’을 나란히 들었다. 어서 그녀의 새 작품을 만나보고 싶다.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