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새로 발간된 하루키의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키의 소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요. 그의 에세이는 관념적이고 무거운 다른 작가들 것과는 달리 일상 에피소드 위주로 가볍게 일기를 쓰듯 써 내려가서 읽는데 부담이 없거든요. 게다가 문체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건 기본이니까. 늘 할 일 없을 때 가볍게 꺼내 술술 잘도 읽었죠. 그가 발간한 에세이집이 꽤 많은데 – 소설은 대체 언제 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기분 우울할 때 집어 들어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 책들 중 하나예요.(엄청 재미있음)
하루키는 잡지의 에세이 칼럼을 고정으로 맡으면 그것들을 모아 에세이집을 내곤 하는데, 이 책도 그런 계기로 일 년 반 동안 연재한 18개의 칼럼을 묶어 발간했다고 해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다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나 ‘더 스크랩’ 정도로 지루했어요. 그런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금 자신이 없긴 해요. 그의 글에 너무 익숙한 제게만 적용되는 지루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늘 반복되는 위스키, 재즈, 마라톤 비유에 더 이상 새로움을 느끼지 못해 지루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하루키의 에세이에 재즈, 위스키, 마라톤이 자주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촉매 역할을 수행할 뿐이에요. 가벼운 에세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부드럽게 풀어나갈 때 그 소품들을 사용했죠. 그리고, 그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비교적 새롭고 신선했어요. 스케일이 아주 크거나 세상에 없는 발상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서너 페이지의 에세이 안에서는 ‘반짝’ 하고 빛이 났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것들이 없어요. 아니, 그것은 이미 티셔츠로 고정이 되어 있다고 할까? 결국은 각 티셔츠에 관련된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재즈, 위스키, 마라톤이었으니…
그리고, 끄트머리에 – 지면을 늘리기 위해 – 실려있는 특별 인터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습니다. 그따위 질문이라니! 차라리 길거리 노숙자에게 질문거리를 준비시켜도 그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재미있으실 수도 있습니다. 책장이 두꺼워서 양도 얼마 안 되니 서점에서 훅 읽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인세를 많이 줬을 출판사에게는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