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서관과 폴랜드의 그래픽 디자인 특강

점심을 먹으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서초 청소년 도서관’이란 간판이 눈에 밟힌 지 꽤 오래되었지만, 문득 들어가 보고 싶어 졌던 건 지난주에서야 였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도 측정 데스크에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다. 꽤 오랜만에 사람이 들어온 눈치였다. QR체크를 한 후 손목을 내밀어 체온을 재고 나니 ‘지하로 내려가시면 돼요.’하며 미소 지어준다. 데스크 옆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서고가 있다. 한눈에 그 안의 책이 모두 들어올 정도로 아담한 열람실이다. 책이 많아봤자 선택의 순간까지의 시간만 늘릴 뿐이다. 들어서 있는 책꽂이마다 책들이 빈틈없이 야무지게 꽂혀 있는데, 신축 도서관이라 대부분 새 책이다. 아무거나 꺼내 펼쳐도 새 책 냄새가 난다. 마치 작은 동네 서점처럼.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 안의 사서는 – 청소년 도서관이지만 – 성인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이 근처에 살고 있지 않아도 도서 대출이 가능했다. 나는 사서가 일러주는 대로 도서관 안의 키오스크 Kiosk에서 도서관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 아이디와 함께 신분증을 제시하니 바로 대출카드를 만들어 준다. 사서는 앱을 깔면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어떤 책을 빌려갈까 두리번거리다가 반납 서적 임시 책꽂이에 놓인 폴 랜드(디자이너/교수)의 ‘그래픽 디자인 특강’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가 빌려갔었던 책, 적어도 어제까지는 대출 중이었던 그 책은 우선 얇아서 마음에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선채로 다 읽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빌리기로 했다. 그날 만든 대출카드가 완벽하게 작동했음은 물론이다.


‘그래픽 디자인 특강’은 폴랜드의 인터뷰만을 담은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꽤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 정리한답시고 지어낸 어설픈 이론서보다 훨씬 좋았다고 할까? 얻고 싶은 것과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지퍼를 올리듯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대화는 원래 그런 거니까. 어쨌든 그 행간을 읽다 보면 폴랜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름대로 유추해낼 수 있다.

연륜이라는 건 정리되어 이마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그 몸과 정신 속에 그대로 내재되어 있고, 그것이 제대로 전이되기 위해서는 관찰이라는 비효율적 시간소비가 필요하다. 같이 옆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찰칵’ 하고 사진을 찍듯 건져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책은 그 시간을 상당히 줄여준다. 고집쟁이 늙은이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되고, 어색한 상황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독서는 꽤 효율적이다.

그건 그렇고, 개인적으로 그의 IBM 로고는 정말 최고라고 말해두고 싶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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