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나와 우산을 뒤집어쓰고는 바닥만 보며 걸었다. 건널목 앞에 멈춰 서있는데 그제야 길바닥에 비에 젖은 낙엽들이 아스팔트에 – 마치 접착제로 고정된 경첩처럼 –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겨울이 될 때까지 악착같이 나무에 말라 붙어있던 나뭇잎도, 추위를 참고 기다렸다가 얼기 직전 쏟아부었던 장대비도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심지어 며칠 전에는 눈도 내렸었다)
계절의 요맘때라면 낙엽들은 이미 모두 가을바람에 땅끝까지 쓸려가고, 비는 저장고 안에서 모두 꽝꽝 얼어붙어있어야만 했다. 대체 저 나뭇잎들은 무슨 사연으로 미라 같은 몸을 한 채로 지금까지 매달려 있었던 걸까?
겨울을 건너 그들이 태어났던 봄을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자연섭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때 아닌 장대비에 저격되어 바닥에 수장되어 있는 낙엽들.
물론 나는 – 나뭇잎이고 뭐고 – 빨리 녹색 불로 바뀐 신호등만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