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올 확률

첫눈이 왔다고 한다 (당일엔 몰랐음)

첫눈이란 말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하지만 ‘첫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그 단어는 –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존재하지만 – 아예 일상에서는 사용하지도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눈을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데, 물론 그것의 물리적 특성이 가지는 매력도 분명히 있을 거다. 예를 들면 포근하다던가, 흩날려 콧잔등에 내려앉는다던가, 세상을 하얗게 만든다던가, 돌돌 굴리면 눈사람을 만들 수 있다던가 하는 것들.
그렇다고 비의 아이덴티티가 밋밋한 건 아니지만, 딱히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아닌 건 확실하다. 올려 쳐다보기도 힘든 낙하속도, 뭐든 홀딱 적셔버리는 이기적인 성질머리, 주변을 난청 지대로 만들어버리는 절대적 소음, 나도 모르게 걸려드는 물웅덩이 트랩까지. 건물 안에서라면 모르겠지만, 역시 같은 공간 안에서는 전쟁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첫 비라는 용어의 사용이 빈번하지 않은 이유는 그 고약한 성질머리보다는 역시 희미한 정체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겨울 특산품 같은 눈과는 달리 순환 철로를 도는 지하철 같은 비는 사계절 내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봄비는 말할 것도 없고, 여름에는 장마, 가을에는 가을비, 심지어는 ‘겨울비’라는 것까지 있다. 일 년에 쥐똥만큼 – 죄송 – 내리는 눈 하고는 천지차이로, 첫 비를 정의하는 건 분명히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역시 비로는

십 년 후 첫눈이 내리는 날 광화문 사거리에서 만나…

같은 로맨틱한 약속은 생각할 수도 없으니까. 눈은 살짝만 내리다 말아도 한겨울 감기 바이러스처럼 쉽게 전파되지만, 비는 제법 내렸다 해도 서울의 천만 시민들이 모두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 처음 비가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있다 쳐도, 당일 저녁 뉴스를 보다가 ‘아 오늘 비가 왔었어? 젠장. 광화문!’ 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오늘 아침에도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도 몰랐죠? 심지어는 걷던 나도 한참 동안 몰랐다.


보통 크리스마스 근처쯤 되면 각 기관의 날씨 담당자들은 올해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 확률을 계산한다. 얼마 전 첫눈이 왔다는 뉴스를 보다가 문득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 확률을 어떤 방식으로 구하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대부분 최근 수십 년 동안 해당 지역에서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린 수로 산출하고 있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성의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기후는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하고, 환경적 특성도 매년 차이가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한두 달 전부터 근미래의 일기예보를 구하듯 산출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너무 단순한 산식을 보고 나니 왠지 조금 김이 새 버렸다.

그렇다고 딱히 마땅한 대안 산식 아이디어도 없긴 하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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