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

‘내가 요즘 덕질하는 애야.’

하며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링크는 JAY B라는 아이돌의 BT.W라는 곡이었다. 박재범이 피처링을 해준 걸 보면 뭔가 이쪽에 인맥이 좀 있는 아이구나 싶긴 했다. 들어보니 음악은 괜찮았고, 박재범의 피처링은 찾기 힘들었다. 아는 분의 장례식장에서 거의 십 년 만에 보게 된 그 친구는 반복되는 일상의 탈출구로 덕질을 시작한 것 같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덕질이라는 건 여유와는 상관이 없을 거다. 회사 일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드워킹을 하는 한 친구도 어떤 배우를 덕질하는 걸 본 적이 있으니까. 그들뿐 아니라 생각 외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덕질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덕질이라는 걸 할 수 없는 성격을 타고났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끈질기지도 않다. 물론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건 서툴다. 게다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는 좋아해 본 적이 없고, 팬덤이 큰 가수는 시기한다.(왜?)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많이 듣고 보고 좋아하긴 하지만, 깊이가 얕다. 

‘응, OO이 이번에 신곡을 발표하면서 곡을 등록하러 음반협회에 가다가 주차장에서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요즘 아스피린을 복용하고 있는 중이야. 아침저녁으로 식후에 한알 씩.’

난 이런 건 할 수 없다.(아스피린을 어떤 증상에 먹는지 조차 모름) 덕질이라는 건 누군가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일 텐데, 나는 상대가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경쟁 혹은 비판 모드부터 발동이 된다. 엄청난 노래를 듣고 나면 ‘흠, 이 정도는 나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면서 유튜브에서 MR(보컬이 제외된 음원)을 검색한다. 멋진 일러스트를 보면 감탄하기 전에 프로 크리에이터를 열고, 귀여운 피겨를 보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스컬피를 주문한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런 성격 때문에 제대로 덕질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내가 덕질 비슷한 정도까지 간 적이 한번 있었는데, 바로 마마무가 그 대상이었다. 언젠가 음악방송에서 그녀들의 ‘너나 해’라는 곡을 보게 되었는데, 곡도 좋았고 다들 노래도 잘했지만 특히 솔라의 ‘넌 너만 생각해, 그럴 거면 너나 해’ 부분에서 특유의 눈빛 덕에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춤까지 멋지게 보이는 것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들의 곡을 엄청나게 뒤져 들었는데, 이후 솔라의 유튜브 채널에서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는 그냥 시들해져 버리고 말았다. 활동이 끝나 잘 어울리던 금발을 다른 색으로 바꾼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 친구의 ‘정말 요즘 관점에서 예쁘게 생겼다’는 지나가는 말에 헤이즈를 살짝 좋아하기도 했고, 최근 슈퍼밴드 2에서 베이시스트 양장세민의 핑거링에 푹 빠졌다가 결승 때 머리를 아이돌처럼 자르는 바람에 관심이 사라져 버린 적도 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유튜브의 딩고 채널의 라이브에서 말을 또박또박 너무 잘하는 모습에 다시 헤이즈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런 건 덕질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어쨌든, 지속적으로 누군가의 팬이거나 무언가를 좋아하고는 있다. 

그런 그렇고,

친구가 JAY B를 덕질하는 이유가 음악 때문인지, 비주얼 때문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다는 이야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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