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秋分과 섭씨 26.5도

올해 여름은 긴 터널을 지나는 듯했다 

여름에 진입할 때부터 한여름까지 후덥지근하고, 흐리고, 비가 지독하게 오는, 마치 세기말 같은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매번 ‘오늘은 망쳤지만 내일은 괜찮겠지.’ 하며 잠들었지만, 늘 더 지독한 다음날을 맞이했다. 계절 담당관이 옆에 있다면 등에 니킥을 꽂아 넣고 싶을 정도다. 진심으로 태어나서 맞이한 여름 중 가장 거지 같은 여름.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다가 문득 달력을 보니 다음 주 금요일이 벌써 추분秋分이다. 


추분은 춘분과 함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특성이 있다. 그 이유는 적도 좌표계를 기준으로 태양이 추분점을 지나기 때문인데, 이해는 뒤로 하고라도 용어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이 꽤 많을지도 모른다. 물론 중등교육과정에 존재하긴 하지만 흙 먹던 시기에 우주적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테니 너무 의기소침해할 필요는 없다.(‘계절별 낮과 밤의 길이에 대한 초등 예비교사의 인식(신윤주,안유민)’이라는 논문을 보면, 가르침을 전달하는 교사들 조차 천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고 하니 기운 내시길.)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이유를 적도 좌표계를 기준으로 설명해보자면, 먼저 아주 이기적으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갑자기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내가 길을 걸을 때 가로수는 그 자리에 서있지만, 나를 중심으로 보면 나무가 내 맞은편에서 움직여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여기서 이해가 안 가면 그냥 포기하자. 몰라도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 이렇게 태양은 지구 주위를 일 년에 한 번 돌게 되는데, 이 궤도를 황도라 한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축은 원래 기울어져 있지만 – 이것이 낮과 밤의 길이, 계절의 변화의 주범임 – 적도 좌표계 안에서는 꼿꼿하게 서 있다는 가정이므로, 태양이 지구 주위를 약간 기울어진 궤도로 돌게 된다. 잘 따라오고 계신가요? 

적도 좌표계와 황도

그 상황에서 적도면을 기준으로 나와 태양이 같은 반구 안에 있으면(그림에서 태양이 A 위치) 낮이 길어지고, 그 반대면(그림에서 태양이 C 위치) 밤이 길어진다. 여기서 황도가 적도면과 만나게 되는 두 곳이 바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이다(그림에서 태양이 B의 위치. 여기서 태양이 황도로 한 바퀴 도는 주기는 일 년으로, 지구와 달을 빗대어 생각하며 헛갈리지 않도록 한다.)  여러분! 춘분과 추분에는 지구상 모든 곳의 밤 낮의 길이가 같습니다. 놀라셨나요? 북반구에서는 봄과 가을 즈음이 되지만 남반구는 반대이기 때문에, 이 둘을 한꺼번에 이분二分이라고도 하고 영어로는 Equinox라고 한다.(춘분은 March equinox, 추분은 September equinox)


사실 추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오랜만에 여름 날씨였던 주말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바깥을 보니 날씨가 좋았다.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서는데 청명한 하늘 아래 습하고 더운 공기가 훅 하고 밀려든다. 누군가가

‘아직은 여름이야’ 

하고 속삭이는 듯한 느낌.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26.5도. 밤 온도가 2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열대야라고 정의하는 것을 보면, 더운 날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바로 자전거에 올라 후덥지근한 공기 안으로 달려들었다. 이내 마파람에 적당한 온도가 되어버린 주변 공기가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싼다. 반소매, 반바지로 가장 기분 좋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씨. 이런 날에는 다이나믹 듀오의 ‘날개뼈’가 어울린다. 와이프의 날개뼈를 긁어주면서 이런 멜로디를 떠올릴 수 있다니… 짜증 나. 날개뼈라면 핫윙이나 오돌뼈 정도만 생각나는데 말이다. 어쨌든, 얼마 남지 않은 애증의 여름에 행복한 기억 하나를 얹을 수 있는 날이었다는 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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