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일주일

이번 주는 조금 정신이 없었다. 계획에 없던 – 꽤 많은 내용이 담겨야 하는 –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자료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 때문에 진행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는 게 더 신경 쓰였다. 자료를 만드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시간은 필요하다. 그래서, 연휴 동안 대충 자료의 뼈대를 만들고, 연휴 다음날부터 계획에 맞춰 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금요일까지 제출되어야 하는 자료 덕에 화요일부터 시작되는 한주가 부담스러웠지만, 살다 보면 그런 때도 있는 거지.

나누어 만들 수 있는 자료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도 분명히 장점은 있다. 협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크리티컬 패스 관리도, 문서의 통합도 필요 없다. 머리에 그려진 그림대로 착실하게 캔버스 위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나는 헤드폰을 뒤집어쓰고는 윤석철의 앨범을 돌려 들으며 기관차가 전진하듯 한 장 한 장 자료를 만들어 나갔다. 


‘남편 될 사람이 윤석철하고 친군데, 결혼식에서 연주를 해준대요.’

청첩장을 미리 받아서 다음 주말에 결혼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늘 밝은 웃음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높여주는,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친구다. 게다가 인디부터 메인스트림까지 엄청난 리스닝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음악 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가 연휴 전에 내게 살짝 귀띔해주었다. 윤석철이라니!

윤석철 하면 음악보다도 ‘레슨 중’이라는 트랙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좋아하는(것 같은) 후배가 남자 친구 혹은 다른 변명으로 몇 번 레슨에 빠지자, 약간 삐진 상태에서 볼멘소리로 그녀와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몇 번 들어보면 윤석철(일 것이다)은 좋아하는 후배에게 자기가 작곡한 새 곡을 들려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무덤 하게 –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반응을 기대하면서 – 자신의 마스터 피스 악보를 건네준다. 타인에 의해서 처음으로 어설픈 물리적 파동으로 전환되는 상황과 오버랩되는 곡은 ‘즐겁게, 음악’이었다. 화려하지도 않고, 기교가 넘치는 것도 아니어서 듣기에 더 부담이 없는 곡. 마치 화요일 저녁 같은 느낌이랄까?

‘안 오실 수 있겠어요?’ 

하고 싱긋 웃는 친구. 물론 윤석철이 아니어도 갔겠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결혼식이 아니라 콘서트를 기다리는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자료를 만들던 삼일 내내 그의 앨범을 들었다. 

대충 자료를 다 만들고, 금요일 오후에 해당 자료를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다 끝내고 나니 이번 주에 진행하지 못했던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때만큼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건물을 나서 한참을 걸어 지하철 역 지하상가로 내려갔는데, 마카롱을 파는 집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제일 두껍고 무채색에 가까운 것을 세 개 골라 구매했다. 그리고는 바로 집으로 직진해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앉아 백예린의 ‘Square’를 들으며 그 마카롱을 먹었다. 

먹는 동안 한 친구는 불금을 보내는 술자리의 안주를, 한 친구는 승진한 남편을 위해 준비한 저녁상을 찍어 보내왔다. 요리를 직접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직접 만들었으면 그만큼 근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카롱을 다 먹고는 소파에 잠깐 기대어 누웠다. 몸이 노곤했다. 무거운 몸으로 잠들 때 듣고 싶은 곡을 골랐다. 윤하의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 정말 오늘은 하루 종일 맑았으니까. 

‘이 곡이 끝나기 전에 잠들고 말 거야..’

곡이 끝나기는커녕 인트로를 들었던 기억조차 없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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