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도 이제는 좀 익숙해졌다. 작년에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적응이 안 됐는데 말이다. 그즈음 한 달 남짓 후면 등 떠밀려 진입하게 될 2026년은 왠지 자동차가 건물사이를 날아다닐 것만 같은, 우주시대에나 어울릴만한 해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12년마다 돌아오는 익숙한 말의 해로, 별것 아닌 일상의 반복이라 했다. 또 다른 이들은 60년 만에 돌아온 신묘하고 역동적인 붉은말의 해라고 떠들어대서, 26년을 마주하기 낯설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것 없이 1월 중순이 되었고, 지하철 2호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지상을 달리고 있음.

‘내 귀에 캔디’라는 리얼리티프로그램이 있었나 보다. 검색해도 별 정보가 없는데, 힘들게 찾아보니 10년 전 즈음 연예인들이 전화로 자신의 고민을 익명의 ‘캔디’로 포장된 다른 이와 나누는 내용이다. 그렇게 인기 있었던 프로는 아님. 유튜브에서 이서진과 한예리가 함께 했던 해당 프로그램의 클립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너무 마음이 따뜻했어서 글을 남겨두고 싶어졌다.
이 프로의 핵심이 음성통화 그 차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가 빌드업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음성통화를 매개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라는 건 인간 객체를 대변하는 것들 중 하나일 뿐 전체는 아니다. 목소리 외의 여백을 상상으로 채워 넣어봐도, 실제 상대의 모습과는 꽤 거리가 있겠지. 그럼에도 대화를 할수록 쌍방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싶어지는 건 그 과정 속에서 상대에게 점점 익숙해지기 때문일 거다. 일부의 정보만으로도 호감이 생기고, 더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게 되고 만다.
한곡만 신청해 주시면 안 돼요? 좋은 걸로. Perhaps Love.
한예리는 LP 바에 앉아있는 상대에게 존 덴버의 ‘Perhaps Love’를 신청했고, 이서진은 그 곡을 신청하며 볼륨을 최고로 높여준다. 그러자 통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그 둘 사이에는 오로지 ‘Perhaps Love’ 뿐이다. 존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뿐이다. 사실은 그 영상을 보고 있던 나도 그랬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이곡을 잊고 있었구나.
어렸을 때 발레를 하다가 연기를 하게 된 한예리. 20대라는 가장 불안한 시절에 삶의 궤적을 틀어야 했던 마음은 얼마나 위태로웠을까?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서기로 결심하고 홀로 앞만 보며 걸어야 했던 그때, 그녀는 마치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겠지. 문득 뒤돌아보니 어느 정도 정착은 한 것 같지만, 이제 주변은 외로움으로 가득하다. 그건 그녀가 잃은 것들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것을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삶이 정돈되었을 뿐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어서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벗어날 수는 없다. 그들이 이 프로그램 안에서 잠시 외로움을 잊고, 그 프로를 보는 나처럼 가슴 따뜻해졌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