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살리토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건너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살리토로 이동하려면 금문교를 지나는 버스(혹은 택시)를 타거나 페리 빌딩에서 배를 타면 되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든 30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미국은 교통카드를 사용한다고 할인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페리의 경우 신기하게도 꽤 할인폭이 큰데, 소살리토나 티뷰론 지역에서 페리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루 이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는 사람이 클리퍼 카드(샌프란시스코의 교통카드)를 충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는 않을 테니까.
며칠 동안 정착을 위해 노숙자들의 왕국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니 마음이 황폐해졌는데, 이대로라면 집을 구하기도 전에 다시 돌아가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시간을 내서 소살리토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빈둥거리며 검색해 보니 호텔 근처에 그곳까지 가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그렇다면 할인폭이 크든 말든 무조건 버스.(나는 뱃멀미를 함)
아침을 먹고 천천히 호텔 밖으로 나와 아침에 검색했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근처 거리는 언제나처럼 복잡했다. 샌프란시스코는 도로가 좁고 언덕이 많은 데다가 대부분 일방통행이어서 웬만한 거리는 자동차를 타거나, 걷거나 큰 차이가 없다. 운전자들도 느긋해서 도로에 보행자만 보이면 보행자 신호든, 정지신호든, 건널목이든, 도로 한복판이든, 가리지 않고 양보를 해대기 때문에 길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건널목 근처에서 움찔거리기만 해도 운전자들이 차를 멈추고 지나가라고 손짓해대는 통에 꽤 혼란스러웠는데,
‘빨간 불인데 왜 지나가라는 거지? 혹시 차로 밀어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겠지만.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는 꽤 많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사용하는데, 이것도 IT 허브, 최첨단 도시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너무 구닥다리 시스템 아래에서 돌아가고 있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표지판이 제대로 붙어있지 않아 정류장을 찾기도 어렵고, 정류장을 찾아도 버스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물론 버스 전광판 따위는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린다는 거.
소살리토에 가려면 금문교를 지나야 하니 일반 버스(Muni: 샌프란시스코 버스)로는 갈 수 없고, 골든게이트 트랜싯 버스라는 일종의 시외버스를 타야 한다. 분명히 교통 앱에서는 정류장이 호텔 바로 옆이라고 하는데,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시내버스는 대부분 표지판이 서있는데, 시외버스 정류장은 표지판은커녕 전단지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대충 지도에서 가리키는 곳 근처에 앉아 버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을 넘게 기다려도 골든게이트 트랜싯 버스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분명히 20분 간격이라고 씌어 있지만, 이곳은 샌프란시스코니까. 개의치 않고 한참 더 기다렸더니 앞쪽에서 일반 버스와는 다르게 생긴 – 골든게이트 트랜싯 버스로 의심되는 –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날 못 봤는지 훅 지나쳐 버리는 버스. 놓치면 또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냅다 손을 흔들었더니, 버스는 150미터쯤 더 가다가 천천히 길가에 정차를 한다. 쉽게 뛰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기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버스도 그 자리에 서서 일 분이 넘게 출발하지 않는다. 혹시 나를 기다리는 건가? 냅다 뛰어가서는 버스에 올라 미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승객들은 모두 ‘골든게이트 트래픽 버스가 늘 이렇지 뭐.’ 하는 표정으로 신경도 쓰지 않는다.
“5불 25센트예요.” 운전사는 친절하게 요금을 알려주었고, 나는 미리 준비했던 요금을 지불했다. 그랬더니 얇은 플라스틱 패스를 건네주며 사용범위에 관한 설명을 해준다.
“혹시 소살리토에 도착하기 전에 일이 있어 내렸다고 해봐요. 화장실 뭐 이런 거. 그러면, 거기서 일을 보고 다시 이 버스에 탈 때 패스를 다시 보여주면 됩니다. 두 번 지불할 필요가 없어요.(어쩌고 저쩌고)…”
마치 미란다 고지를 전달하는 형사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주절거리는 운전사. 승객들에게 미안하니
“빨리 출발해 주세요. 제발…”
그렇게 겨우 출발을 해서 조금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어떤 여자가 올라타며 뮤니(시내버스) 환승 표를 운전사에게 보여준다.
“이 버스는 뮤니가 아니에요.” 운전사가 이야기했다.
“왜요?” 그녀는 왜 이 버스가 시내버스가 아닌지 궁금했나 보다.
운전사는 잠시 대답을 생각하다가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었는지, “하여간, 그 표로는 안 돼요.” 한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승객에게 운전사는 다시 행선지를 물었고, 승객은 소살리토에 간다고 했다.
“그럼 오 불 이십오 센트를 내시면 됩니다.”
운전사도 더 깊이 설명하지 않고, 승객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자, 먼저 오 불이고요. 좀만 기다려 봐요. 여기 나머지 25센트.” 여자는 요금을 건넸다.
“네, 이거 받으세요.” 운전사는 다시 얇은 플라스틱 패스를 건네주며 이야기를 이었다.
“혹시 소살리토에 도착하기 전에 일이 있어 내렸다고 해봐요. 화장실 뭐 이런 거. 그러면, 거기서 일을 보고 다시 이 버스에 탈 때 패스를 다시 보여주면 됩니다. 두 번 지불할 필요가 없어요.(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또 다음 정거장에 도착했는데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올라타면서 또 뮤니 환승 표를 들이민다.
“이 버스는 뮤니가 아니에요.” 운전사는 말했다.
“왜?” 어르신도 궁금하신 것 같았다. 왜 이 버스가 뮤니가 아닌지 말이다.
“하여간, 그 표로는 안 돼요.”
다음에는 뱃멀미고 뭐고 꼭 페리를 타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