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Space Sweeper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모험, 갈등, 전투 등을 다루는 무협소설 같은 장르예요. 처음에는 SF소설의 한 장르였는데, 이후 비슷한 소재와 내용을 다루는 만화, 영화 혹은 다른 콘텐츠들을 총칭하게 되었죠. 과학적인 고증이나 섬세한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하는 일반 SF 물과는 조금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신나는 쌈마이 스타일의 액션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유명한 작품으로는 이름만 들어도 ‘아하’ 하게 되는 스타트렉이나 스타워즈가 있습니다.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도 꽤 인기가 있었죠?

이 장르는 SF물에 속하기 때문에 그 팬들을 나누어가져야 하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SF 팬들은 과학적 이론이나 고증에 관심이 많은 탓에 그런 부분이 약해 허술하다는 소리를 듣는 건 이 장르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우주를 날아다니는 우주선에서 굉음이 난다고?!’ 뭐 이런 거죠.(소리가 안 나면 되게 재미없을 것 같긴 한데..) 그런 이유로 스페이스 오페라 물은 – 실제 과학이론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 나름대로 작품 안의 SF요소들이 탄탄한 논리구조를 가진 세계관 안에 놓여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정 작업이 영화를 만드는 일과 거의 동등하게 중요할 수밖에 없죠. 

해외에는 어느 정도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장르작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에서만은 죽을 쑤고 있는 이유는 – 한 둘이 아니겠지만 – 역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영상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부족한 국내 CG 기술력이나 부족한 예산이 가장 큰 이유고요. 그런 영상의 퀄리티 문제는 영화를 B급처럼 보이게 했고, 마니아들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게 되었죠. 게다가 우주… 실제로 달을 밟은 나라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우주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느낌이라 공감 자체가 덜 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꽤 오랜만에 우리나라의 새 스페이스 오페라 물에 대한 소개가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바로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얏타맨 아님)가 그것이었어요. 같은 감독의 ‘늑대 소년’에서 흙 먹던 송중기 외에도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동등한 비중으로 주연을 맡고 있는 이 영화는, 원래 극장에서 상영될 계획이었는데, 빌어먹을 코로나 때문에 계속 상영일을 미루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국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 세계에 공개가 되었습니다. 

공개일 당일부터 인터넷에서 정말 수많은 ‘승리호’의 감상글을 만나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안 좋은 평도 생각보다 많았어서, 이걸 봐야 하나 꽤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루 이십사 시간 중 여덟 시간은 일을 하고 여덟 시간은 잠을 자니 우리가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은 여덟 시간이 채 안되는데, 페이스북도 보고, 트위터도 들여다보고, 게임도 좀 하고, 유튜브에서 신규 클립 감상 좀 하고, 책장도 조금 넘기고, 클럽하우스에서 조금 떠들다가, 뉴스 코로나 소식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넷플릭스의 승리호 두 시간을 끼워 넣을 틈을 내기 힘들더라고요. 

옛날에는 텔레비전 조금 보고 다시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더 이상 할 게 없었을 테니, 콘텐츠의 퀄리티 만으로 고객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나누어 주었죠. 뭐든 심심한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바야흐로 고객의 시간을 빼앗기 위한 기업들의 무한경쟁의 시대에 진입하고 말았습니다. 서비스 프로바이더들도 나름대로 경쟁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겠지만, 이제는 사용자들도 서비스의 홍수 속에서 선택에 꽤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으니 참… 어쨌든 저는 그래도 그날 저녁 넷플릭스를 열어 이 영화를 보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더랬습니다. 그런 글들 때문에 안 봤으면 정말 아쉬웠을 뻔했거든요. 

2092년의 미래, 인류는 5%의 선택된 자들만이 낙원인 UTS Utopia above the sky에서 살아갈 수 있고, 나머지는 오염된 지구 혹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며 살게 됩니다.  승리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우주의 넝마주이: 장 선장(김태리), 김태호(송중기), 박 씨(진선규) 그리고, 업동이(유해진)는 어느 날 쓰레기를 처리하다가 인간형 로봇 도로시(박예린)를 만나게 되는데…

처음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면이 꽤 멋졌는데, 특히 업동이가 작살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이 빠르고 박력 있습니다. 생각보다 자연스러워서 놀라기도 했고요. 이전에는 잘 몰랐는데, 제가 유해진 목소리에 꽤 익숙해졌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우주선 안에서 모두 함께 화투를 치는 신에서 로봇 풀 페이스 마스크 위로 유해진의 목소리가 오버랩되는 게 전혀 위화감이 없었거든요. 하긴 정말 많은 영화에서 그만큼 들었던 목소리이긴 하니까. 게다가

’이 아저씨가 실성을 하셨나. 한번 해볼까 누구 시체가 매달리나?’

하는 김태리의 읊조리는 저음은 – 자그마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 그녀의  선장 역할에 꽤 잘 어울렸습니다. 

승리호의 CG 작업은 김용화 감독의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담당했는데요. 그는 2011년 ‘미스터 고’ 영화를 찍기 위해 미국의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했는데,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스스로 회사를 만들었었죠. 최근에 ‘신과 함께: 죄와 벌(2017)’, ‘기생충’(2019), ‘백두산(2019)’의 CG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영화들도 CG가 괜찮긴 했습니다만, 이번 승리호는 개인적으로 CG 퀄리티가 엄청났다고 생각하거든요. 할리우드의 SF물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오브젝트의 양감과 물리적 움직임이 일품입니다. 기사의 VFX 비용에 스텝 롤을 대비해 보면 얼마나 많은 개발자들을 저임금으로 갈아 넣었는지 가늠할 수가 있는데요. 넷플릭스나 다른 거대 자본들의 투자가 이런 처우들의 개선을 만들어낼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세계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엑스퍼트들이 세계 수준의 대우를 받는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면 우리는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하도 억지 신파에 질려 있어서 그런 부분에 과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관객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외국인 연기자들의 약간 부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끔 몰입을 방해하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건 제가 할리우드 비싼 배우들의 멋진 연기만 봐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쨌든 승리호의 외국인 연기자들은 모두 단역이니 말이죠. 

이번 승리호로 인해 앞으로 더 신나는 스페이스 오페라 물을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코로나 시대에 영화판도 고민이 많아지고 있겠지만, 이를 계기로 더 다양한 배급 및 소비 패턴들이 개발되어 코로나 종식 이후에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영화에서 김태리의 마지막 대사를 영화판 관계자들께 드리고 싶네요. 코로나 터널을 지나 영화계가 직진할 수 있도록

‘시동 걸어라.’

반말 죄송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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