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의 이야기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이 작품을 드니 뷜네브 감독의 ‘컨택트’ 원작 정도로 기억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SF소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한 단편소설로, 작가인 테드 창에게 네뷸러상과 스터전상을 선사하기도 했었죠.

아마 SF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테드 창을 모르실 리가 없을 겁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테드 창을 좋아하는데요. 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면, 하나는 정확한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는 거예요. 단지 상상력 만으로 SF소설을 쓰는 작가들과는 조금 다르죠. 덕분에 그의 작품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화려한 미래를 엿보는 즐거움 같은 것은 조금 덜합니다. 반면에 과학 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니까요. 

다른 하나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SF적인 미래의 모습이나 관련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에 빗대어 철학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품은 읽다 보면 ‘이게 SF 소설이 맞나?’ 하게 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일부 영역 전문가 작가들이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급급한 것과는 달리 문학적 표현도 유려하고 철학적 고민도 담뿍 담겨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글을 읽는 맛이 난다고 할까요? 

이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는 1998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2002년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이라는 첫 번째 단편 모음집에도 포함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영화화된 것이긴 하지만, 뷜네브 감독의 ‘컨택트 Arrival’는 보다 SF적인 요소 – 외계인이 출현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과정 – 에 집중하고 있어요. 물론 이 작품을 대중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한 작전을 짜야한다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 같긴 합니다. 소설에서도 대부분의 지면을 외계인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한 언어학적 / 과학적 이론 및 시행착오 과정에 할애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감상글들을 보면 언어학적 접근방식 혹은 페르마의 정리에 의거한 외계인과의 소통 가능성 – 다시 이야기하자면 SF적 요소 – 에 편향되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감상이 조금 달랐는데요. 소설에서 외계인의 존재나 그들과의 소통은 작가가 이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논리적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작품의 책 띠지에 올릴 소개글을 써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들이 지구에 출현하여 인간과 대치하게 되었다.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필수! 그 작업을 위해 언어학자인 루이즈와 물리학자 게리가 투입되었는데…

정도가 될까요? SF냄새가 물씬 납니다. 역시 저라도 소개 글에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보면 SF 매니아들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외계인의 언어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어버린 언어학자 루이즈와 앞으로 가지게 될 그녀의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에서 가리키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딸이죠. 이 이야기는 외계인과 소통해가는 과정과의 교차편집으로 루이즈 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루이즈는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미래는 자유의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 정의는 테드 창이 페르마 정리의 원리를 사용하여 소설 속에서 논리적으로 멋지게 증명해 보였죠.(페르마 정리에 대한 설명은 다른 지면에서 할 수 있게 되기를 기약해보고요)

주인공인 루이즈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시점은 갑자기 출몰했던 외계인들이 다시 지구를 떠나고, 루이즈가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물리학자 게리와 결혼한 지 이 년이 지난 시점이에요. 그녀는 남편인 게리와 함께 디너쇼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집 뒤 테라스에서 달빛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아이를 가지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 루이즈는 이미 자신이 가지게 될 아이가 딸이라는 것, 얼마 후 남편과는 헤어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자신의 딸이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에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즉,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그 순간, 이미 그 아이의 인생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녀는 담담하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녀의 딸에게 그녀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독백처럼 하고 있습니다. 딸의 불행한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 운명에 반해 – 아이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끝이 불행하다 해도,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되어준다는 것도 역시 알고 있죠.

테드 창은 외계인이 출몰하는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깊은 물리학적 지식을 활용해서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와 그 불가항력에 대한 순응은 운명이나 윤회 같은 동양 철학적 접근과 닮아있죠. 하지만, 그 운명에 절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루이즈의 모습은 하이데거의 기초 존재론을 투영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자는 미래의 죽음 자체를 미리 자신의 삶을 투영하는 도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피투被投된(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던져진) 존재이지만, 또한 그 전제를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기투企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거죠. 이는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루이스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SF적 배경 요소 안에서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상을 증명한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신선하지 않나요? 저는 이런 부분이 바로 –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겨우 스무 개 미만의 작품 만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 테드 창만의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날씨도 좋은데 아직 안 읽어보셨다면 오늘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려요. 단편이라 길이도 짧다니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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