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가 그렇게 말했었다.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현상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다.
To live is the rarest thing in the world. Most people exist, that is all
그는 분명히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저런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겠지. 사실 나는 저 문장을 듣자마자 단어 사이사이에서 오만함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가 지은 동화인 ‘행복한 왕자’를 읽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행복한 왕자’는 마을의 탑 위 왕자 동상 – 심지어 사람도 아님 – 이 아래를 굽어보며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자신 몸의 장식을 제비를 통해 하나하나 내어주는 감동적인 동화다. 하지만, 나는 동화 속 자애로운 왕자의 선행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했었다. 이런 느낌이랄까?
맛있는 것을 먹고는 ‘맛있기는 한데 좀…’ 하고 말하게 되는,
그 애는 분명히 좋은 아이지만 ‘그런데, 좀…’ 하게 되는,
그런 것.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마치 자신이 세상을 굽어살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생각하고 있는 듯한 왕자도 별로였고, 그런 오만함의 실현을 위해 자연스럽게 착취당하던 제비도 한심했다. 무엇보다도 그런 상황을 비판하기엔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되어있는게 문제였다. 비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스토리랄까?
물론 많은 아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했을지도 모를 동화를 내가 너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속물인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조금 미안해져서 오스카 와일드의 미담이라도 찾아볼까 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그의 또 다른 명언(?)을 만나고 말았는데,
착한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낫다. 그러나 못생긴 것보다 착한 것이 낫다.
It is better to be beautiful than to be good. But it is better to be good than to be ugly.
아무래도 내 촉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