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커피

한국에서는 통신 요금제를 데이터 무제한으로 신청해 놓고 어디서든 쉽게 인터넷을 사용했었지만, 미국에서는 여러 이유로 그게 쉽지 않아서 무척 답답했다. 데이터 요금 자체도 저렴하지 않은 데다가, 이런저런 서비스의 제약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크리켓 Cricket이라는 통신사를 선택했었는데, 이 통신사는 테더링(아이패드 등의 기기를 자신의 핸드폰 무선망에 연결해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제공하지 않아서 랩탑을 쓸 때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무선 인터넷 인프라 자체가 우리나라만큼 잘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늘 원활하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하철만 들어가도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내비게이션 앱이 작동이 안 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덕분에 처음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얼마 동안은 계속 불안했었다. 익숙해지고 나니 ‘인터넷이란 게 뭐람?’ 하면서 잘 다니게 되긴 했지만…


정착 초기에는 여러 정보를 지속적으로 검색해야 했기 때문에 인터넷 검색이 거의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이유로 무료로 WiFi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커피숍인 피츠 Peets, 스타벅스 Starbucks, 필즈 Philz를 자주 찾았는데, 인터넷 품질은 구글과 제휴하여 서비스하고 있는 스타벅스가 가장 좋았다. 샌프란시스코 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볼 수 있는 커피숍이 스타벅스와 피츠인데, 살던 곳 근처인 Fillmore-Sacramento 에도 대각선으로 두 커피숍이 마주 보고 있어서 늘 어디를 들어갈까 고민했었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더 밝은 분위기인 피츠를 자주 찾았지만, 낡고 음침한 스타벅스도 나름 괜찮았다.

두 커피숍에 비해 필즈는 비교적 최근에 생겼는데, 나는 이 커피숍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날 뱅킹을 신청하러 마켓 스트리트를 따라 올라가다가 처음 보게 되었다. Front 스트리트 옆의 한 매장 앞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줄을 서있길래 ‘대체 어떤 맛집인 거야?’ 하면서 지나쳤는데 그게 바로 필즈였다.

줄 서는 것을 싫어해서 서울에서도 맛집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여기는 샌프란시스코니까. 그리고, 딱히 할 일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어서 줄을 서보기로 했다. 햇빛도 따뜻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어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줄을 서면서 유심히 보니 커피를 주문하는 방법이 일반 커피숍과는 조금 다른데, 먼저 바리스타에게 가서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신청한 후 포스 앞에 가서 내가 주문했던 음료를 이야기하고 계산하는 방식이다. 바리스타에게 주문을 하고 포스 앞에 섰는데 부탁했던 음료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낭패인 것이다. 바리스타 앞에서

‘어디 한번 추천해 주시는 음료를 마셔볼까요?’

하고 싶어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이름을 가진 음료를 추천받게 될까 봐 겁이 난다. 포스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직원에게 내가 했던 주문을 기억 못해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스타벅스에서조차도 오 분 동안 주절주절 원하는 레시피를 읊는 이곳 사람들은, 원두의 종류부터 물의 온도까지 세세하게 바리스타에게 전달하여 악착같이 자신만의 커피를 받아낸다. 바리스타도 손님의 주문 레시피를 마치 듣기 평가를 하듯 주의 깊게 듣고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기억 못 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왜 민트 모히토 커피에 민트 잎이 아니고 상추를 올려준 거죠?’라고 항의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커피숍에 상추가 있을 리는 없잖아. 시럽 펌핑이 덜 되거나, 음료가 너무 미지근한 정도라면 대충 넘어가 주면 된다. 주문한 레시피와는 조금 다른 음료를 받았다 해도 

어쨌든, 날씨는 좋으니 말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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