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가구와의 고군분투: 작은 불편부터 큰 불만까지

처음에는 집, 가스, 인터넷 등의 큰 문제를 해결하느라 작은 것들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대충 어느 정도 큰 것들이 정리되고 나니, 평소에는 딱히 몰랐던 소소한 불편함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가 주방도구를 가져다줘서 그쪽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사실 그 외에는 준비되어 있는 게 하나도 없긴 했다. 무엇보다도 바닥이나 침대에 엎드려 랩탑을 두드리다 보면, 금방 허리가 아파오는 게 문제였다. 뭘 먹을 때마다 바닥에 늘어놓고 먹는 것도 맘에 안 들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 마치 홈리스처럼 생활하던 나는

책상을 사기로 했다.

미련 없이 버리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좋은 것을 살 필요는 없었다. 인터넷에 보면 가끔 ‘드립니다’ 코너에 가구가 나오기도 하지만, 남 쓰던 가구를 얻어 쓰는 것은 조금 찜찜하다. 사형수가 사용하던 의자에 앉았다가 빙의가 되어 샌프란시스코의 연쇄살인마가 된다던지 하면 곤란하다. 부모님도 우울해하시겠지?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어디서 책상을 사면 좋을지 물어보니 같이 IKEA에 가주겠다고 했다. 


오클랜드 입구의 IKEA에 가니 50불부터 몇백 불까지의 그야말로 다양한 책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IKEA가 들어왔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격이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만 원 남짓에 책상이 생긴다는 건 좀 신기하다. 하지만,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니 쉽게 고를 수가 없었다. 이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바로 옆에 더 좋은 것이 보이고, 이것으로 해야지 하면 먼저 본 다른 물건이 생각났다. 미친 듯이 주문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에서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주 급한 것 아니니 조금만 더 생각해 볼까?’하고는 친구와 아이스크림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설거지를 하다가 건조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 매일매일이 이런 생활임 – 주변의 타겟(생활용품 매장)에 건조대를 사러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49.9불짜리 책상을 보고는, 카트까지 함께 사서 돌돌 집으로 끌고 와 버렸다.(건조대를 사 오는 것은 잊어버림)

막상 집에 가지고 들어와 포장을 열어 보니 좀 난감했는데, 능지형 당한 죄인의 뼈와 살을 수습하는 장의사처럼 흩어져 있는 부품을 스스로 조립해야 했기 때문이다. 뭔가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괜히 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은 피곤한 날이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이야기가 있잖아.’

하며 마음을 추슬러보지만, 원래 사려던 건조대만 사들고 왔으면 피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건조대를 못 사 온 게 또 마음에 걸렸다. 해결된 일이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뭘 즐기라는 거지? 심지어 이 말을 했던 로버트 엘리엇은 정신과 의사도 아닌 심장 전문의였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데도 이렇게 공식적으로 조언을 해도 되는 걸까? 

어쨌든, 나는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꽤 꼼꼼하게 완벽을 기하는 편이기 때문에 – 물론 즐기지는 않음 – 나사를 하나 조립할 때에도 나중에 이걸 분리할 또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듯 꼼꼼히 드라이버를 돌려 댔다. 작업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이건 누구나 잘 만들 수 있는 제품은 아니었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그건 확실하다. 별 하나를 주고는 ‘별 0개는 입력이 안되어서요.’라는 분노 섞인 상품평이 있을 것만 같은 제품이다.

 매뉴얼에는 가이드선 하나 죽 그려놓고 ‘이 합판과 저 나무기둥을 결합하시오’라고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양의 결합 나사는 언뜻 봐서는 나무 홈 속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감도 안 잡혔다. 책상이라면 다리 결합하는 나사 네 개만 돌리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여러 부품들을 복잡하게 덧 대어 붙여야 한다니 조금 놀랐다. 모든 부품은 하나만 제공되기 때문에 잘못해서 부품이 망가지면 게임 종료, 모든 작업이 ‘point of no return’의 연속이다. 공작에 취미가 없는 사람들은 대충 만들다가 포기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나도 너무 완벽하게 책상 조립을 마쳤음에도 다시는 이런 조립가구를 구매하지는 않기로 결심했을 정도다.

어쨌든, 특정 나사 하나가 제대로 안 맞아서 15분 동안 씨름했던 기억을 빨리 잊게 되길 바란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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