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장 정리와 인공지능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도서관 아래쪽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도서관 영업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주문하고는 창가 옆 스툴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한 점원이 문 옆 장식장의 굿즈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맨 윗 장부터 정리를 하는데 단순하게 오와 열을 맞추는 작업은 아니고, 새로운 굿즈를 박스에서 꺼내 올리거나 제품군의 위치를 다시 배치하기도 하는 큰 작업이었다. 자신만의 혹은 매장에서 제공한 알고리즘이 있는 건지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속도감 있게 작업을 진행해 나간다. 
먼저 새로 들고 나온 박스의 굿즈와 기존 장식장 위의 굿즈를 살펴보고는 품목과 색깔에 따라 대충 덩어리 배치를 수행한다. 그 일이 끝나고 나니 세부적인 위치 정리 작업이 시작된다. 그런데, 정리 작업을 하던 그녀는 뭔가가 맘에 안 들었는지 잠깐씩 멈칫하며 한걸음 뒤에서 전체 장식장을 살펴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반 간 제품군의 덩어리 배치 조정을 다시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다시 세부 정리.

나는 커피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잊고 십여 분간 그 환상적인 장식장 굿즈 재배치/정리 작업에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여러 다른 태스크들이 혼합 진행되는 프로세스였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 세부 정리 중 프로토 타입의 변화를 고민할 때를 제외하고는 –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각 태스크들의 연결은 마치 브리지 연결이 잘 된 곡처럼 조화로웠다. 작업을 마친 그녀는 뿌듯하게 전체 장식장을 살펴보고는, 퇴출 굿즈를 담은 박스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모든 매장, 전체 굿즈에 적용하기 위한 정리 작업 매뉴얼은 일반화될 수밖에 없다. 매뉴얼대로만 하면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만, 가치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어제가 복제되어 오늘이 되고, 오늘이 복제되어 내일이 될 뿐이다. 이행 단계에서 빛이 나기 위해서는 해당 매뉴얼을 현 상황에 테일러링 하여 적용하는 센스가 필요하고,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작년 범한 철학에 실린 ‘예술, 기술, 상상력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딥러닝에 의한 창작활동에 대한 현 예술가들의 고민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글쓴이는 인공지능 예술의 본질을 사람의 것과 구분하며 결과(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판매가 되는)가 같다고 해도 그것은 예술품이 아니고, 인공지능 또한 예술가가 아니라는 비판적 결론을 내린다. 사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작품 창작 알고리즘은 여러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점점 사람의 그것과 닮도록 진화하고 있고, 그 속도도 빠르다. 그런 이유로 증명하는 과정 하나하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분노, 위기의식 혹은 걱정으로 논문의 주제를 중명하려 했는지는 충분이 공감이 갔다. 인공지능의 예술계 침입은 관계자들에겐 심각한 현실적 문제(소비되는 방식이 같다는 건 밥그릇에 심각한 영향을 줄 테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류의 존재가치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창작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뒤로 하고라도, 기계와 인간의 차이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인더스트리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화두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인간을 통한 태스크 수행 미학은 프로세스 중간중간에 큰 그림을 확인하고 언제든 스텝을 무시한 피봇팅을 결정/이행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계는 인풋 데이터가 확보되는 앞 단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정의하고 이행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행되는 과정은 컨베어벨트 위를 움직이는 크리스피도넛 같을 뿐, 아름답지는 않으니까. 반면에 오늘 내가 눈으로 확인한 매장 내 장식장 굿즈 배열작업은 넋을 잃고 구경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론 정리하는 그녀도 아름답긴 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멍하니 있는 걸 더 좋아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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